항목 ID | GC063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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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古見寺石造如來立像 |
이칭/별칭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고견사 불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수월리 1]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구본용 |
제작 시기/일시 | 고려 시대 전기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제작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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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12월 23일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12년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보호각 설치 |
현 소장처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1 |
원소재지 |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1 |
성격 | 고려 시대 석조 여래 입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186㎝[높이]|61.8㎝[어깨 폭] |
소유자 | 고견사 |
관리자 | 고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있는 전통 사찰 고견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 여래 입상.
[개설]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677년(문무왕 7)에 창건된 고견사(古見寺) 경내에 안치된 석조 여래 입상이다.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견암사(見岩寺)에 뿌리를 두고 있다. 1395년 조선 태조가 고려 왕조의 왕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해마다 2월과 10월 수륙재(水陸齋)를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 제1700호 거창 고견사 동종과 고려 시대 석탑 등이 남아 있다.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1988년 12월 2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고견사 대웅전 동쪽에 있다. 원래 노천에 놓여 있었으나 2012년 거창군의 문화재 보수 사업으로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형태]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하나의 화강암 바위에 불상과 광배를 조각한 입상이다. 머리는 소발형(素髮形)[별다른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의 두발 형식]이며, 얼굴은 형태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윤곽은 뚜렷하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고 목은 짧으며 삼도(三道)[불상의 목에 표현된 3개의 주름]가 없다. 천의(天衣)[보살이나 천인들이 입는 얇은 옷]는 통견의(通肩衣)[불상의 양 어깨를 모두 덮은 양식의 옷]이며 발끝까지 덮을 정도로 길게 흘러 내려져 있다.
광배(光背)[불상 등의 배면에 광명을 표현한 것. 머리 뒤의 원형의 것을 두광(頭光), 등 뒤의 타원형의 것은 신광(身光)이라 함]는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광은 단판 연화문(單瓣蓮花文)과 연주문(蓮珠文)으로 처리되어 조형미가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과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 석불 앞에 공양구를 차릴 수 있는 사각형의 넓적한 자연석이 놓여 있다.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의 높이는 186㎝, 어깨 폭은 61.8㎝이다.
[특징]
화강암의 큰 바위에 불상과 광배를 한 몸에 조각하여 만든 여래 입상으로 고려 시대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거창 고견사 석조여래입상은 거창의 대표적 전통 사찰인 고견사 경내에 있으며 고견사의 오랜 역사성을 대변하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