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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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崔進士古家 |
영어공식명칭 | Choi Jinsa Old House in Mureung-ri, Geocha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월곡길 75-8[무릉리 26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호열 |
건립 시기/일시 | 19세기 말 - 거창 최진사 고가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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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7월 14일 - 거창 최진사 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최진사 고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거창 최진사 고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260 |
원소재지 | 거창 최진사 고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260 |
성격 | 고택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있는 지주 계층이 건립한 근대 한옥.
[개설]
근대기 20세기 초에 거창 지역 상류층 가옥의 건축 형식과 공간 구성을 잘 보여 주는 집이다. 격식을 갖춘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및 곳간채가 잘 남아 있어 당시의 주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
[위치]
거창 최진사 고가는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위치하고 있다. 남하면사무소에서 영서로를 따라 남으로 2.3㎞ 정도 내려오면 산포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하여 지방도 1099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1.4㎞ 더 들어가면 무릉리 마을 입구에 이른다. 마을 뒤편 산자락 끝에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거창 최진사 고가는 이산(二山) 최원근(崔元根)이 처음 지었다. 1894년 이산의 아들 최홍렬(崔鴻烈)이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면서 ‘최진사 고가’로 불리고 있다.
[형태]
거창 최진사 고가는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가 주축선 상에 배치되어 있다. 앞이 낮고 뒤가 높은 대지의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안채를 배치하고, 그 앞에 사랑채와 대문채를 건축했다. 안마당 오른편에는 곳간채가 남서향으로 있다. 근대 한옥에 속하는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한식 홑처마 팔작집이다. 평면 구성은 정면 좌측부터 부엌, 안방, 대청, 작은방이 배열되어 있고, 각 실의 앞에는 폭이 다른 툇마루가 놓여 있고, 특히 온돌방 뒤에는 벽장 반침 등 다양한 수장 공간이 부설되어 있다. 전통 한옥과 달리 실(室)의 용도와 기능 및 생활 양식을 고려하여 위치와 규모를 결정했으며, 내부 공간의 변화 있는 구성은 거창 지역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안채는 소로를 사용하여 꾸민 소로 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다섯 개의 도리를 둔 오량가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도 근대 한옥으로, 정면 5칸의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사랑방 앞에 정면 2칸 측면 1칸 크기의 누마루를 달아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면의 구성은 정면 좌측부터 누마루, 사랑방, 내루(內樓) 등 5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루 뒤에는 사랑방에 불을 때는 부엌[상부 다락]이 있다. 창호를 달아 막은 누마루와 내루 앞에는 살림집에서 보기 드문 계자각 난간을 부설하여 품격을 높였으며, 안채와 같이 내부에 다양한 수장 공간을 두고 있다. 사랑채도 창방 위에 소로를 끼워 장식한 소로 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오량가이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의 맞배집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둔 형식이다. 곳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최근에 수리하고 정비했다. 중방 아래는 판벽으로 처리하고, 그 상부는 토벽을 치고 회로 마감하였다.
[현황]
거창 최진사 고가는 2011년 7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 최진사 고가는 누대로 축적된 부(富)를 토대로 지은 근대 한옥으로 평면 구성과 건축 형식과 구조, 수장 공간의 구성, 세부 장식 등 여러 면에서 특징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전통 한옥이 근대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근대 한옥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