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69
한자 居昌葛川書堂
영어공식명칭 Galcheon Seod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67-34[갈계리 107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73년연표보기 - 거창 갈천서당 창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8년 - 거창 갈천서당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12월 27일연표보기 - 거창 갈천서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갈천서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 갈천서당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로 767-34 지도보기
성격 교육 기관|서당
양식 한식와가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임현종
관리자 임현종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거창 출신 현신 갈천 임훈이 아우 임운과 함께 조선 전기에 건립한 서당.

[개설]

조선 명종 때 6현신의 한 사람으로 광주 목사를 지낸 갈천(葛川) 임훈(林薰)[1500~1584]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아우 임운(林芸)과 함께 건립한 서당이다. 갈천 임훈은 안음현 갈천동에서 태어나 1540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광주 목사 부임을 마지막으로 낙향하였다. 1584년 향년 85세로 별세하였다. 이후 이조 참판, 이조 판서로 추증되었으며 1871년에는 효간공(孝簡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또한 임훈, 임운 형제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임운은 정려[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34호]를 받았다. 갈천의 사상은 성(誠), 경(敬) 중심의 실천 철학으로 요약할 수 있고,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등과 교우하였다. 문집으로는 『갈천 문집』이 있다.

[위치]

거창 갈천서당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북서쪽에 있는 북상면 갈계리에 있으며, 소정천의 좌안 곡저 평야에 입지하고 있다. 북쪽에는 덕유산[1,614m], 동쪽에는 호음산[930m], 남서쪽에는 금원산[1,353m] 같은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북상면사무소에서 송계사 방향, 즉 지방도 1001호선[송계로]을 따라 약 600m를 더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으로 약 140m 농로를 따라가면 거창 갈천서당이 있다. 주변에는 은진 임씨 집성촌이 있으며, 집성촌 안에는 서간 소루[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52호]가 있고, 강 건너 서남쪽에는 거창 만월당[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0호]이 있다.

[변천]

거창 갈천서당은 마학동에 1530년에서 1540년 사이에 갈천 정사로 건립되었다. 이후 성팽년이 갈천 서쪽 석담의 아래에 있는 회암 위에 이건하였다. 그러나 병란으로 소진되어 중건하였으나 다시 화재로 멸실되었다. 1878년에 팔완당의 후손 정지화가 주축이 되어 유림들의 도움으로 중건하였다.

[형태]

거창 갈천서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중앙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 중당 협실(中堂夾室)형이다. 청방간에는 사분합 들문을 달아 공간 운영에 변화를 주었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초석은 자연석 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혼용하여 사용하였는데 정면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공포 양식은 정면에만 소로 수장집이며 배면에는 장여 수장집으로 정면에만 주두와 소로로 장식되어 있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가이다. 처마는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기와는 한식 기와를 사용하였다. 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현황]

거창 갈천서당은 거의 평지에 가까우며 남서향하여 거창 갈천서당의 정당을 배치하고 정면에는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 두었다. 마당 서쪽에는 신도비가 2기 있으며 서당 경내 동쪽 밖에는 고직사와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갈천 선생은 부역 제도와 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노력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 추앙받았으며, 이황의 문인으로서 학문 또한 깊었다. 거창 갈천서당갈천 선생의 정사로 갈천의 애민 정신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거창 갈천서당은 전후 정면에만 둥근 기둥과 주두, 소로를 사용하여 정면과 배면의 장식을 달리하여 정면성과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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