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712
한자 曺仲仁 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of Jo Joongi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산21
시대 조선/조선 전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익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51년연표보기 - 조중인 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06년연표보기 - 조중인 몰
건립 시기/일시 1921년 - 조중인 신도비 재건립
현 소재지 조중인 신도비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산 21 지도보기
성격 비|신도비
양식 일반형 석비
관련 인물 조숙(曺淑)
재질 화강암[귀부와 이수]|오석(烏石)[비신]
크기(높이, 너비, 두께) 124㎝[높이]|46㎝[너비]|13㎝[두께]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1921년에 세운 조선 전기의 문신 조중인을 기리는 신도비.

[개설]

조중인(曺仲仁)[1451~1506]의 본관은 창녕이며, 자는 백연(伯淵)이다.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거창을 거쳐 안의현 황산에 입향하였다. 이조 판서 조문택(曺文澤)이 증조할아버지이며, 선조 때 회양 부사를 지낸 죽헌(竹軒) 조숙(曺淑)이 증손(曾孫)이다. 주부(主簿) 벼슬을 역임하였고, 증직으로 병조 판서를 제수받았다. 조중인 신도비는 후손들이 조중인의 업적을 기려 세운 신도비이다.

[건립 경위]

조중인 신도비조중인이 세상을 떠난 지 416년이 지난 1921년 원래 있던 비의 비문이 오래되어 글자가 희미하여 알아보기 어려워 다시 신도비를 세웠다.

[위치]

조중인 신도비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서 마리면위천면 소재지를 지나 관광지로 유명한 수승대 입구에서 동북쪽 황산 마을로 들어간 동촌 정안골의 정안재 뒤 창녕 조씨 선산 입구에 있다.

[형태]

조중인 신도비는 귀부와 이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전체 크기는 270㎝이다. 비신의 높이는 124㎝, 너비는 46㎝, 두께는 13㎝이다.

[금석문]

비신의 상단부에 ‘판서 조공 중인 신도비(判書曺公仲仁神道碑)’라 전서로 새겼으며, 비문은 비신 사면에 행서체로 은진(恩津) 임필희(林苾熙)가 썼다.

[현황]

조중인의 신도비 뒤로 묘역이 있고, 묘역의 석물로는 묘비와 문인석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 마을에 창녕 조씨가 들어와 살게 된 유래를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전기 창녕 조씨의 사회적 위상과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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