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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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表贇 |
영어공식명칭 | Pyo Bin |
이칭/별칭 | 수연(粹然),모재(茅齋)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494년 - 표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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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10년 - 표빈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20년 - 표빈 문과 별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63년 - 표빈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07년 - 표빈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겸 경연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 사부 증직 |
거주|이주지 | 표빈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
묘소|단소 | 표빈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신창(新昌) |
대표 관직|경력 | 김해 부사 |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문신.
[가계]
표빈(表贇)[1494~1563]의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수연(粹然), 호는 모재(茅齋)다. 증조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표별(表潎)이며, 할아버지는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낸 표위산(表偉山)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표정명(表貞命), 어머니는 사간(司諫)을 지낸 배언도(裵彦道)의 딸 분성 배씨(盆城裵氏)이다. 부인은 진양 강씨(晉陽姜氏)다. 표빈의 신창 표씨 일문은 표위산 때 처음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모곡(茅谷)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표빈은 천성이 온후하고 몸가짐이 단정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서거정(徐居正)이 표빈의 재주를 높게 평가하였다. 성장해서는 종숙(從叔) 표연말(表沿沫)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10년(중종 5) 17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1520년(중종 15)에는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이후 형조 좌랑(刑曹佐郞)·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그리고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울산 군수(蔚山郡守)·안동 부사(安東府使)·김해 부사(金海府使) 등 중종 대에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다. 울산 군수 재임 시에는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이 청백비(淸白碑)를 건립하였다.
표빈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성리학 연구에 힘썼다. 만년에 침류정(枕流亭)[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소재]에서 지은 시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표빈의 문집으로는 1책의 『모재집(茅齋集)』이 전한다.
[묘소]
표빈의 묘소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모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07년(선조 40) 아들 표헌(表憲)이 선무 원종 1등 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으로 녹훈되었기에 표빈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겸 경연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 사부(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兼經筵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父)로 증직되었다. 『전고대방(典故大方)』에 따르면, 중종 연간 청백리(淸白吏)에 뽑힌 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