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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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鍾燮 |
영어공식명칭 | Sinjongseop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용태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1월 25일 - 신종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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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신종섭 한족회 상법 과장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9월 24일 - 신종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신종섭 대통령 표창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신종섭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01년 9월 - 신종섭 우리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로 선정 |
출생지 | 신종섭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 |
학교|수학지 | 신종섭 유학지 - 일본 도쿄 |
활동지 | 신종섭 활동지 -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浦] |
성격 | 항일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족회(韓族會) 상법 과장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가계]
신종섭(辛鍾燮)[1888~1920]의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1888년 1월 25일 경상남도 거창군의 천외방 중동 마을[지금의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유소년 시절이나 국내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활동 사항]
서른 살 즈음이던 1910년대 중반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 1919년 일본에서 학업에 전념하던 중 고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곧장 만주로 건너가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4월 서간도의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浦]]에서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이 군정부를 구성하여 독립 전쟁의 총본영으로 삼는 한편, 동포들의 자치 기관으로 한족회(韓族會)를 결성했다. 당시 신종섭은 한족회에 참여하여 상법 과장(常法課長)으로 활동하며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3·1 운동에 이어 그 이듬해인 1920년에는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무장 독립군들이 일본군과 싸워 큰 전과를 올리자, 일제는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인 삼원보를 습격하여 독립군을 색출한다며 집집마다 수색을 하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조선인 수백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본군에게 체포된 신종섭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일제의 귀순 종용을 끝내 거부하다 1920년 9월 24일 서른셋 한창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신종섭의 항일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대통령 표창을 하였으며, 1991년에는 다시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2001년 9월 국가 보훈처 진주 보훈 지청[현 경남 서부 보훈 지청]은 거창 출신 독립운동가인 신종섭을 ‘우리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