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03
한자 金采煥
영어공식명칭 Kim Chae Hwan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심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김채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김채환 사망
출생지 김채환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거주|이주지 김채환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활동지 김채환 활동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거창 3·1 만세 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김채환거창 3·1 만세 운동의 주모자 김호(金濩)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서 김채환(金采煥)[1886~1958]은 거창 지역의 2차 의거를 주동한 인물이었다. 아버지 김호 등 집안 친인척과 독립운동을 상의했고 가조·가북 지역의 만세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락책으로서 역할을 했다.

[가계]

김채환거창 3·1 운동의 주모자인 김호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독립운동가 김채환은 거창 지방에서 재력과 세력이 있는 선비로 추앙을 받아 왔던 김호의 아들이다. 1919년 거창 3·1 운동이 지역 유림을 중심으로 진행되자 아버지 김호의 뜻을 받아들여 지역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월 21일 일본 헌병 분대 습격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핵심 인물이 거창 헌병 분대의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자, 친척인 김익동·김관묵·강두몽 등과 상의하여 비밀 통문을 만들어 지역 유지와 주민들에게 돌렸다. 3월 22일 가조·가북의 주민 3,000여 명이 참여한 거국적인 만세 시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사전 연락과 정보 활동을 취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모자로 아버지 김호가 옥고를 치렀지만, 김채환은 옥고를 면하고 수감된 이들을 옥바라지했다. 당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거창에는 1978년 3·1 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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