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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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渾 |
영어공식명칭 | Byeon Hon |
이칭/별칭 | 명숙(明叔)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559년 - 변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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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4년 - 변혼 거제 현령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26년 - 변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변혼 신도비 설립 |
출생지 | 변혼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삭주 부사(朔州府使)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명숙(明叔)이다. 아버지는 변희숙(卞希璹)이다. 부인은 일선 김씨(一善金氏)로 김익(金翼)의 딸이다.
[활동 사항]
변혼(卞渾)[1559~1626]은 1559년(명종 14)에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에서 태어났다. 9세에 학산(學山) 문산두(文山斗)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20세 때에 책을 읽으면서 여가 시간에 무예를 익혔다. 1591년(선조 24)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듬해인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인(士人) 전우(全雨)와 함께 초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곧 거창 의병장인 김면(金沔)을 도와 출전했는데, 항상 선봉장으로서 우지령, 병암 등에서 왜적을 격퇴하여 왜적이 거창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았다.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은 변혼을 칭찬하며 말하기를 "공이 아니었다면 거창은 방어가 불가능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문경(聞慶) 가수(假守)[전쟁 중 임금이 발령장을 보낼 겨를이 없어 초유사가 대신하여 임명한 군수]가 되었는데, 전란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 때는 왜적이 황석산성을 공격해 오기 때문에 군마를 양성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40세에는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에 의하여 명나라 장수가 가조현에 머물고 있기에 이들의 접반사로써 군량을 제공하였다. 1614년(광해군 6)에 거제 현령(巨濟縣令)에 임명되고, 이후 월갑 첨사, 위원 군수 등을 거쳐 삭주 부사를 역임했다. 1626년(인조 4) 3월 25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에 변혼 신도비가 1988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