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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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基益·金基漸 兄弟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추모 시기/일시 | 1866년 - 김기익, 김기점 정려 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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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김기익, 김기점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대동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형제.
[개설]
김기익(金基益)[?~?], 김기점(金基漸)[?~?] 형제는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 간 시묘를 하였으며, 눈이 안 보이는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한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가계]
김기익, 김기점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활동 사항]
김기익, 김기점 형제는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馬利面) 대동리(大東里)에 살았다. 두 형제는 효심이 깊어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도 정성껏 모셨고, 아버지가 병이 나자 매일 목욕재계하고 기도했다. 한겨울에도 기도를 지속했으며, 급기야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시게 해 아버지가 소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눈이 멀자 형제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어머니를 보살폈고,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눈을 대신해 음식을 드실 때에도 하나하나 집어 먹여 드렸다고 한다. 이들의 효성이 전해져 1866년 나라에서 ‘효자 증 통정대부 경주 김공 기익 증 동몽교관 기점지려(孝子贈通政大夫慶州金公基益贈童蒙敎官基漸之閭)’의 정려를 내렸다.
[상훈과 추모]
김기익, 김기점에게 1866년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렸다.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대동리 동편 마을에 김기익, 김기점 형제의 형제각(兄弟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