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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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希敦 |
영어공식명칭 | Jeonghuidon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추모 시기/일시 | 1887년 - 정희돈 정려 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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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정희돈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동래 |
[정의]
조선 후기 거창에서 활동한 효자.
[개설]
정희돈(鄭希敦)[?~?]은 나이 드신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상례와 제례를 행하는 데 정성을 다하여 지방 유생이 건의하여 효행으로 정려되었다.
[가계]
정희돈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거창 마리면에 거주하였다.
[활동 사항]
정희돈은 동래인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 거주하였다. 정희돈은 늘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여든 살이 넘게 되자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러자 어머니를 항상 업고 다니며 원하시는 것을 다 맞춰 드렸다. 또한 집이 가난하여 부모에게 좋은 음식을 해 드릴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한겨울에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일해서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마련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정성으로 기도하였으며, 급기야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서 국을 끓여 드렸는데 어머니가 깨끗이 완쾌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상을 치를 때에도 정성으로 예법에 맞추었으며, 제사를 지낼 때에도 그 정성스러움은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정희돈의 효행이 마을에 널리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자, 마을의 유생이 조정에 상소를 올려 1887년 정려가 내려졌다. 현재 거창군 마리면 동리교 개울 위쪽에 ‘효자 증 가선대부 호조 참판 동래 정희돈지려(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東萊鄭希敦之閭)’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정희돈의 효행을 기려 1887년(고종 24) 4월에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처음에 소곡에 있었는데, 나중에 장백 마을로 옮겼다. 거창부사 홍기주(洪岐周)[재임 1886~1887]가 글을 지었고, 거창부사 이탁[재임 1888~1889]이 글을 썼다. 마리면 장백 마을 안에 영호재(瀯湖齋)를 세워 열녀 완산 이씨(完山李氏)와 효자 정희돈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