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55 |
---|---|
한자 | 愼最命 妻 驪興 閔氏 |
영어공식명칭 | Virtuous Woman Minssi |
이칭/별칭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추모 시기/일시 | 1789년 - 신최명 처 여흥 민씨 정려 하사 |
---|---|
사당|배향지 | 열녀 고 학생 신최명 처 여흥 민씨지려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죽림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여흥(驪興)|여주 |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지역의 열부.
[개설]
열녀 민씨(烈女 閔氏)는 본관이 여흥이며, 거창 신씨 신최명(愼最命)의 처이다. 남편이 호환을 당하여 물려 가자 호랑이를 물리치고 시신을 찾아와 장례를 치르고 결국 뒤를 따라 절명한 열부이다.
[가계]
여흥 민씨(驪興 閔氏)는 경기도 여주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때 인물인 민칭도(閔稱道)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구례리 밑담 마을이 들판 가운데 있다. 마을의 서쪽 끝에 여흥 민씨가 많이 살고 있어 ‘민담’이라고도 한다.
[활동 사항]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자 부인이 곧바로 그 허리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연수산까지 따라갔다. 호랑이가 먹으려 하니 시신을 감싸고 호랑이를 때리며 항거하였다. 호랑이가 간 후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와 장례를 지냈다. 그러나 민씨는 이후 이레를 먹지 않고 뒤를 따르니 이에 민씨와 남편을 같이 묻었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에 관에서 민씨의 열행을 알고 이듬해인 1789년에 정려를 내렸다. 당시 남상면 고천에 살았는데 1831년 후손들이 정려를 구암 마을 건너편 개울가로 옮겨 ‘열녀 고 학생 신최명 처 여흥 민씨지려(烈女故學生愼最命妻驪興民氏之閭)’를 세웠다. 정려는 각기둥 2개를 세우고 기둥 상부에 화강암재 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현재 위치는 거창군 웅양면 죽림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