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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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薑川里 |
영어공식명칭 | Gang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강천리(薑川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의 북서쪽에 있으며, 강동 마을, 마항 마을, 면동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강천리는 고려 말 이예(李芮)가 살던 곳으로 이예의 호에서 따 마을과 앞 냇물의 이름을 ‘강천’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강천리의 강동 마을은 버드나무에 꾀꼬리 둥지가 있는 형국으로 유지앵소(柳枝鶯巢)라 ‘소앵골(巢鶯谷)’에서 ‘새양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생원 정제안이 생강을 재배하여 주민들에게 적선하였다 하여 생강 강(薑) 자를 따서 ‘강동(薑洞)’이라고도 한다. 마을 동북쪽을 ‘역골’이라 하며 옛날에는 ‘문주동’이라 하였다. 고려 시대에 효자 반전이 살던 곳이며 동계 정온 선생의 출생지이다.
마항 마을은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와 위천면 강천리 사이의 말목 고개 아래 자리하여 ‘말멕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화 된 지명으로 볼 수 있다.
면동 마을은 잠자는 소의 형국을 하고 있어 ‘면우동(眠牛洞)’이라고 하다가 ‘면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강천리의 강동 마을, 마항 마을 등은 안의군 고현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3월 1일 안의군 폐지로 고현면과 북하면이 합하여 위천면이 되었다. 따라서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가 되었다.
강천리의 면동 마을을 고려 중엽 강양 이씨가 마을을 열었다고 하고 며느리가 자리를 잡았으므로 며느실 부곡(婦谷)이라 하던 것을 ‘미너실’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마항 마을은 고려 말 합천 이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강천리의 마을들은 고려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연환경]
강천리는 현성산[965m]의 북동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강천리는 서쪽 현성산 자락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들의 침식으로 형성된 침식 분지이며 여러 지류들이 모여 강천을 이룬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들이 형성한 계곡과 계곡 사이에는 침식에 남겨진 능선들이 지류들과 나란히 형성되어 있다. 여러 지류들이 마항 마을에서 합류하여 강천을 이루고 동류하며 거창 위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마항 마을과 강동 마을 남쪽으로 넓은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는 강천과 남쪽의 상천이 거창 위천으로 흘러들며 형성한 범람원이다. 강동 마을은 성령산의 남사면의 곡구에 있으며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강천리는 2016년 5월 말 현재 140세대 총 304명[남자 134명, 여자 170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강천리의 자연마을 중 강동 마을이 60세대 총 125명[남자 55명, 여자 70명]이 거주하여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강천리의 강동 마을에는 국가 지정 중요 민속 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된 1820년에 중창한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가옥인 ‘거창 동계 종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