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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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 李氏 |
영어공식명칭 | Yeongcheon I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익현 |
입향 시기/일시 | 1457년 - 영천 이씨, 이보흠의 아들 이간인이 경상남도 거창군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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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영천 - 경상북도 영천시 |
입향지 | 영천 이씨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오가리 |
세거|집성지 | 영천 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웅곡 |
세거|집성지 | 영천 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
세거|집성지 | 영천 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완대리 오류동 |
세거|집성지 | 영천 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도동 |
성씨 시조 | 이문한 |
입향 시조 | 이간인 |
[정의]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간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연원]
영천 이씨의 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문한(李文漢)이다. 이문한의 7세손 이극인(李克仁)이 익양군(益陽君)에 봉해지고, 익양군의 후손 이대영(李大榮)이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영천으로 하게 되었다. 거창 지역의 영천 이씨는 이대영의 7세손 이보흠(李甫欽)을 중시조로 하는 충장공파(忠莊公派)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보흠은 1429년(세종 11) 식년 문과에 급제한 뒤, 집현전 박사, 『세종실록(世宗實錄)』 편수의 기주관을 역임하였다.
[입향 경위]
1457년(세조 3)에 이보흠은 순흥 부사로 임명되자 유배와 있던 금성 대군(錦城大君)과 함께 영남 사인들을 규합하여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보흠의 아들 이간인(李肝仁)이 삼족 멸문의 화를 피해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오가리에 숨어 들어와 살다가 이간인의 아들 이근(李根), 이지(李枝), 이식(李植)이 웅곡(熊谷)으로 옮겨와 살면서 거창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738년(영조 14) 이보흠의 관직이 복원되어 직첩이 내려졌고, 1791년(정조 15) 충장(忠莊)이란 시호를 받았으나 후손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1846년(헌종 12)에야 직첩을 가져와 웅곡 종가에 모셨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 자료에는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가 54가구의 영천 이씨가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3년 통계에 의하면 거창에는 243가구 680명의 영천 이씨가 살고 있다. 영천 이씨의 집성지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오가리,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웅곡, 거창군 주상면 완대리 오류동, 거창군 주상면 내오리 도동이 있다.
[관련 유적]
거창 지역의 영천 이씨와 관련된 유적은 거창읍 장팔리 웅곡 마을에 있는 이보흠을 기리는 성인재(成仁齋)와 금성 대군과 이보흠을 제사지내는 덕천 서원(德泉書院)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