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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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左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입향 시기/일시 | 1273년 - 청주좌씨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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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청주 - 충청북도 청주 |
입향지 | 청주좌씨 입향지 - 북제주군구좌면 한동리 |
세거|집성지 | 청주좌씨 집성지 -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서귀포시 대정읍 |
성씨 시조 | 좌형소(左亨蘇) |
[정의]
좌형소(左亨蘇)를 시조와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
[개설]
좌씨의 연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 태사(太師) 좌구명(左丘明)에서 비롯되었다. 좌구명은 당시 대유(大儒)로서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춘추좌씨전』은 『논어』와 『맹자』처럼 이름 있는 고전이다. 좌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273년(원종 14)으로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이 삼별초를 평정한 후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몽골에 귀속시키고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로 목마장을 설치하여 명마(名馬)를 사육하면서부터이다.
[연원]
우리 나라의 좌씨는 본관이 모두 청주이나, 육지부 청주의 좌씨도 제주도에서 분가한 것으로서 근원은 동일하며, 우리나라의 좌씨 발상지는 제주도라 할 수 있다. 제주 좌씨 입도조인 좌형소는 첫 입국 성씨로 청주좌씨의 시조이며 입도 1세이다.
[입향 경위]
제주 좌씨 입도조인 좌형소는 고려 충렬왕 초기인 1270년경 중국 원나라의 천관시랑(天官侍郞)으로 있다가 고려가 원에 복속된 후 제주도에 목마장이 설치되자 감목관으로 파견되어 구좌면 한동리에 입도 정착하였다. 제주는 탐라총관부가 폐지되어 탐라가 고려에 반환된 후에도 목호들의 지배하에 있다가 최영 장군이 1374년(공민왕 23) 8월 목호의 난을 진압한 후 고려의 영역으로 재편입되었다. 이후 후손에게 세습되던 감목관직을 6세손 좌한기(左漢棄) 대에 이르러 고려에 반납하면서 완전 귀화되었다. 이때 좌한기는 구좌면 한동리를 떠나 한경면 두모리로 이주하여 정착하여 고려인으로서 생활 기반을 잡았고, 이때부터 가세가 번영하였다.
[현황]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서북부 지역 목장을 좌가장(左哥場)이란 속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지역이 좌씨 소유의 토지였음을 보여 준다. 지금도 이 지역에 청주좌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귀포시 대정읍 등지에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 전체적으로 519가구에 1,687명이 살고 있으며, 서귀포시 지역에는 50가구에 165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