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머니 자탄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282
한자 -自歎歌
이칭/별칭 「첩노래」,「첩의 집에 간 본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79년 5월 4일 - 「큰어머니 자탄가」 노복이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 「큰어머니 자탄가」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
채록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지도보기
성격 민요|노동요
기능 구분 길쌈 노동요
가창자/시연자 노복이

[정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여성들이 길쌈할 때 부르는 소리.

[채록/수집 상황]

「큰어머니 자탄가」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1979년 5월 4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1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에서 구연자 노복이로부터 조사 및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길쌈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으로 정제된 형태의 서사 민요가 발달하였으나 노동 형태와 노랫말의 연관성은 없다. 그리하여 서사 민요로서 시집살이의 애환 등 삶의 고달픈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많다.

[내용]

「큰어머니 자탄가」 는 성주 지역에서 물레를 이용하여 실을 뽑는 과정에서 불려진 민요이며 「명잣기」, 「베짜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단순한 일의 반복이 이어지는 작업을 하면서 부른 노래임에 따라, 노동의 형태와 노랫말이 긴밀하게 연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농사일과 달리 강도가 센 육체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주로 시집살이의 애환과 졸음을 쫓는 말 등을 노래함으로써 지루한 일의 작업 능률을 높인다. 긴 시간 동안 일하면서 부르기 때문에 비교적 장형의 노래로 발달하였다.

성주에서 수집된 「큰어머니 자탄가」는 「큰어마이 노래」의 한 계열로, 「첩노래」, 「첩의 집에 간 본처」 등으로 불리는 민요 유형 중 하나다. 주로 길쌈할 때 불리었다. 내용은 처첩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첩의 집에 가서 대접을 받은 후 ①그냥 집으로 돌아가거나 ②집으로 돌아와 본처가 자살하거나 ③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유형 등으로 나뉜다. 성주에서 수집된 「큰어머니 자탄가」는 ②집으로 돌아와 본처가 자살하는 유형에 해당한다. 세 가지 유형 모두 가부장제의 모순과 폐단이 극에 달했던 시기의 부조리한 사회적 제약과 축첩에 의한 여성들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임아임아//우런님아

우런님의//거동보소

하늘겉은//갓을씨고

구름겉은//말을타고

등너메다//첩을두고

밤으로는//자러가고

낮으로는//놀러간다

이래가주고//못살겠네

임없어//타는간장

서러워서도//못살겠네

이래가주고//안되로다

행주처말랑//들치입고

짚신한짝//이신한짝

짝을지어서//신을신고

흔튼머릴랑//집어꼽고

행주처말랑//덜치입고

새북바람//찬바람에

논뜰밭을//쫓아가니

이구겉은//첩년보소

꽃자리를//피털치며

여만지소//저만지소

어라요년//물러쳐라

꽃자리가//내자리가

꺼적대기가//내자리지

은소루배는//담배담고

놋소루배는//불떠담고

화주설댈랑//뻗쳐놓고

크다크다//큰어마님

담배한대나//잡으시오

어라요년//물러쳐라

놋소루배가//내불이가

속소루배가//내불이지

은소루배가//내담배가

박쪼가리가//내담배지

갈래갈래//나는갈래

우러집에//나는갈래

크다크다//큰어마님

이왕지사//오싰거든

하룻밤만//유해가소

하룻밤만//유해가마

얼겅절겅//건넌말에

요포대기//깔고가지

어라요년//물러쳐라

요포대기//하로왔나

임보자고//내가왔다

크다크다//큰어마님

이왕지사//오싰거든

전지귀경이나//하고가소

앞뜰논도//내전지요

뒷뜰논도//내전지요

전지귀경이나//하고가소

전지귀경//하로왔나

임보자고//내가왔지

이왕지사//오싰거든

하룻밤만//유해가소

간다간다//나는간다

우리집에//나는간다

첩으란년//하는말이

크다크다//큰어마님

앵도겉은//딸이있오

제비겉은//아들있소

미구겉은//첩년있소

바대겉은//논이있소

살이진//밭이있소

집동겉은//말이있소

다락겉은//소이있소

간다간다//나는간다

논뜰밭을//쫓아와서

독새겉은//빈방에

쫓아와서//앉았으니

임이올까//누웠으니

잠이올까

임도잠도//아니와서

아홉가지//약을묵고

열두가지//맘을묵고

죽었도다//죽었도다

큰어마님//죽었도다

부고가네//부고가네

첩의집에//부고가네

미구겉은//첩으란년이

한손으로//받아가주

두손으로//되어들고

뭣때미로//죽었겠소

날때미로//죽었겠지

이왕지사//죽은사람

십냥짜리//미터해다

가죽나무//신틀에다

스물너이//상두군아

어하넘차//해여주소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길쌈은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부덕(婦德)으로 권장되었던 양잠업이었다. 사대부의 의복 재료가 명주였으며, 양잠이 다른 직물보다 노동 과정 및 방적 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회경제적 변화와 장시의 활성화에 의해 치산(治産)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생산 노동과 치산 능력이 중요해짐에 따라 단순한 부덕의 영역에서 벗어나 여성의 주요 경제 활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 후기는 가부장제의 모순과 폐단이 심화되고, 삼강(三綱)의 강조와 ‘열(烈)’의 강제화가 심화되었다. 그로 인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제약과 억압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축첩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해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를 직접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성 공동체와의 노동 현장에서 「큰어머니 자탄가」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고 공감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여성의 생활상, 특히 여성 공동체의 유대와 문화적 전승 및 교육의 기능에 대해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여성 경제사적 맥락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경제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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