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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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인성(姜仁聲)[1897~1930]은 1897년 1월 13일 익산군 웅포면 상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이튿날인 3월 6일에 군산 서래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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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총권(高寵權)[1867~1959]은 1867년 11월 26일 익산군 황화면 마전리[현 충청남도 논산시 황하면 마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에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과 정대원(丁大元) 등 여러 천도교인들과 함께 여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논의하여 망성면과 금마면 등의 연락 책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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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호(金秉鎬)[1865~?]는 1865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으로 이주해 낭산면 호암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병호는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정대원(丁大元)·이유상(李有祥)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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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남전교회는 1897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남전리에 설립된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남참문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으며, 도남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교육했다.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1970~1980년대 인권운동과 농민 권익운동에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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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이리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장터에는 미리 약속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주동자는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 문용기(文鏞祺)[1878~1919]였다. 영명학교가 있던 군산에서 고향인 익산으로 건너온 문용기는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몰래 만났고 3월 26일의 이리 만세 시위에 이어 4월 4일에 다시 시위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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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진(朴永鎭)[1882~1928]은 185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이었던 박영진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익산교구의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을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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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의 문집. 『북산산고(北山散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가 남긴 문집이다. 임규는 1895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수학하였으며,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이후 최남선과 함께 귀국하여 국학 관계 서적을 간행하고 많은 민족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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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 당시 익산에서는 천도교 조직을 활용하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기독교계와도 연계하여 천도교와 기독교 두 종교계가 함께 하였다. 특히 1919년 4월 4일 시위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시가행진을 벌였고 일본 헌병대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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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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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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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일성(宋一成)[1893~1960]은 1893년 6월 3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등과 함께 익산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논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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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오덕근(吳德根)[1861~1950]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오길영(吳吉泳)이다. 여동생은 오덕순(吳德順)이고, 아들은 오성환(吳成煥)이다. 오덕근은 186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길영이 고창군수로 부임하면서 전라도로 이주하였다. 오덕근이 아홉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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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우(劉奉祐)[1861~1947]는 1861년 7월 18일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튿날인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인 이중열(李仲悅)을 비롯한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후 최재붕(崔在鵬)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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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상(李有祥)[1876~1941] 1876년 6월 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상은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정대원(丁大元)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면과 용안면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이중열로부터 「독립선언서」 100매를 받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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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열(李仲悅)[1869~1928]은 1869년 6월 18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좌암(佐庵)이다. 1919년 3월 1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봉우(劉奉祐)·이유상(李有祥) 등의 교인들과 함께 익산에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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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7~?]는 1897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익산에서도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당시 이형우는 용안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함라와 웅포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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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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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영섭(洪永燮)[1855~1922]은 1855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3월 2일에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 박영진(朴永鎭)은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 면의 연락 및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