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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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비석. 김육 불망비(金堉不忘碑)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김육(金堉)[1580~1658]을 기리기 위하여 1659년 세운 비석이다. 김육은 조선 인조, 효종 때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白厚), 호는 잠곡(潛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상헌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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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함라산의 풍수와 삼 부잣집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나산괘염 터의 바리 자리에 집터를 잡은 삼 부잣집」은 함라산(咸羅山)[240.5m]의 풍수와 관련하여 삼부잣집이 부자가 된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나산괘염(羅山掛念)은 조선 시대에 함라현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함라팔경〉에 7번째로 등장하는 어구로, ‘함라산 중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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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담가 먹는 김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전하여 오는 반지는 배추와 무에 김치소를 채워 넣고 젓국이나 육수로 만든 국물을 부어 숙성시켜 만든다. 반지의 ‘지’는 김치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이니, ‘반지’라는 말은 양반가의 김치라는 뜻이기도 하고, 동치미도 아니고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김치라는 뜻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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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소방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터. 소방산봉수대(所方山烽燧臺)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소방산[일명 봉수산]에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산봉수대에서는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함라면 일대와 미륵산을 포함한 익산 전역이 한눈에 보인다. 소방산봉수대는 해발 220m의 봉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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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속하는 마을. 예전에 함열군 관아가 있던 마을로 ‘머리골’이라 하였다. 머리골을 ‘수동(首洞)’이라 하였는데, 이후 ‘수동(壽洞)’으로 바뀌었다. 수동마을이 있는 함열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 행동, 천남리, 천북리, 수동, 안정리 갈마동을 합병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함라면 함열리로 개설되었다. 수동(壽洞)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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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신대리는 북쪽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동쪽으로 익산시 황등면 구자리, 남쪽으로 익산시 함라면 다망리, 서쪽으로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 익산시 함라면 신등리와 접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함열군 군내면에 속하였으며,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터 혹은 신대라고 불렸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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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함라노소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함라노소(咸羅老所)는 마을의 동약(洞約)이 시행된 장소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수동마을 노인들은 1682년에 함라노소를 설립하여 마을 공동체가 지켜야 하는 규약을 만들어서 시행하였다. 매년 정월 15일이면 읍강법을 시행하였는데,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자, 불효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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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전하여지는 행동마을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 「은행나무 덕분에 금을 찾아낸 일본인」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행동마을의 은행나무와 관련된 설화이다. 행동마을의 은행나무 한쪽이 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이유는 인근의 함라산(咸羅山)에 있는 금맥 때문이라는 것이 설화의 요지이다. 「은행나무 덕분에 금을 찾아낸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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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부농 가옥.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함라마을에 있는 이배원 가옥은 주변의 익산 김병순 고택, 조해영 가옥과 함께 ‘함라마을 삼부잣집’이라고 불린다. 이배원의 아버지 이석순은 임피에 거주하다 함라마을에서 누룩을 팔면서 초가를 짓고 정착하였다. 이후 동생과 함께 상업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배원은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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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서예가이자 사업가. 이집천(李集阡)[1900~195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하당(荷堂)이다. 할아버지는 이석순이고, 아버지는 이배원(李培源)이다. 아들은 이화영이다. 이집천은 1900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19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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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부농 가옥. 익산 김병순 고택은 일제 강점기 함라 지역 3대 부호 중 하나인 김병순(金炳順)이 지은 가옥이다. 김병순은 할아버지인 김기형이 벼슬을 하면서 일으킨 가세를 바탕으로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여 재산을 모았다. 김병순은 1926년 익산, 김제, 군산 등에 소유한 토지를 바탕으로 익산시 함열읍 와리에 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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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전통 담장.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함라마을에 있는 옛 담장이다. 전통 한식 담장으로 마을 주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살면서 꾸준히 쌓고 보수하여 왔다.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천남1길 일대에 있다. 주변에 조해영 가옥, 익산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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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에서 전하여 오는 기싸움 또는 농기 뺏기에 대한 이야기. 「정월에 여섯 동네가 함께 했던 함열 기싸움」은 함열[익산의 옛 지명]의 함라 지방에서 전래되는 기싸움 또는 농기뺏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익산 함열 농기뺏기는 1940년까지도 전승되어 오다가, 근래 들어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놀이가 되었다. 1927년 조선사상통신사가 발행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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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부농 가옥. 조해영 가옥은 익산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과 함께 ‘함라마을 삼부잣집’이라 불린다. 다른 부잣집과 달리 조해영의 선조들은 옛부터 함라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조씨 집안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은 조해영의 고조할아버지인 조한기인데, 고종 때 사천군수와 정읍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조해영의 아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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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노소. 노소란 오늘날의 경로당, 노인정과 같이 노인 등이 모여 쉴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 시대 노소는 단순히 공간적 기능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를 통솔하고 이끌어 가는 정치·사회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수동마을의 함라노소는 1687년(숙종 13) 7월 건립되어 유서가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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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훈은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워서 바르게 행하자’이다. 교육목표로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하여 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어린이를 기른다[도덕인], 탄탄한 기초학력으로 소질과 적성을 찾아 노력하는 어린이를 기른다[실력인], 새롭게 탐구하는 지식과 창의력을 갖춘 어린이를 기른다[창의인], 아름다움을 찾고 가꿀 줄 아는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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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는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구자리, 익산시 함라면 신대리, 동쪽으로는 익산시 함라면 금성리, 서쪽으로는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송천리와 접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당시 본래 함열군의 중심 지역으로서 ‘함열읍내’, 또는 ‘함열’이라 불렸던 곳이므로 기존의 명칭을 따라 함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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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교육기관. 함열향교(咸悅鄕校)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교육기관이다. 1437년(세종 19)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한 이래 매월 음력 초하루[1일]와 보름[15일]에 봉심을 올리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함열향교 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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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함열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각. 함열향교 대성전(咸悅鄕校大成殿)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 시대 함열향교 건물이다. 함열향교는 함라산 자락의 야트막한 경사지에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중앙에 있고 명륜당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였다. 명륜당 뒤쪽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가면 대성전이 있고 대성전의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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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허균의 유배 생활 추정터. 허균 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허균(許筠)[1569~1618]이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1611년(광해군 3)에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허균이 전라북도 익산의 함열로 유배를 자원한 까닭은 함열 지역이 또 다른 생활의 근거지였던 부안과 인접한 곳이고, 당시 함열현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