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500009
한자 -監房生活-益山矯導所-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함낭로 207[와초리 154-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민구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있는 국내 유일의 영화 촬영용 익산교도소 세트장에 관한 이야기.

[개설]

익산교도소 세트장은 폐교된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를 리모델링하여 2005년 지은 교도소 세트장으로 「홀리데이」, 「7번방의 선물」, 「아이리스」 등의 영화와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촬영된 곳이다. 200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교도소의 배경이 되면서 촬영 명소로 유명해졌다. 이곳이 교도소가 등장하는 영상물의 촬영 명소가 된 까닭은 국내 유일한 교도소 세트장이기 때문이다.

[속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해 놓은 장소]

살다 보면 종종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살아온 날들을 되뇌어보지만 이것이다 싶은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일도 안 생겨야 하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언제나 나를 옥죄일 때, 마음 한 켠은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날들이 잦아지면 불면의 밤이 되풀이되곤 한다. 원인도 이유도 뾰족한 해결책도 알 수 없는 대책 없는 반복의 날들이 계속되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괴로움이 되어 찾아온 어느 불면의 밤에, 나는 문득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이 정작 나 자신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를 가둔 나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쩐지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서가 떠올랐다. 그 안에는 구치소가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교도소로 가기 전에 일정 기간 수감되는 장소가 구치소이다. 그곳이라면 어쩐지 이 대책 없는 마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서 경찰관에게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나를 심문하고 나를 옥죄인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진술해 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경찰관은 그것이 구치소에 가두기에는 너무나 가벼웠던 모양인지, 잘못 찾아오신 것 같다면서 친절하게도 출입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의 죄의 무게에 대해, 그것이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는 식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가볍거나 무거운 죄를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부과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죄의 무게에 대한 상념은 나를 다시 죄의 무게를 판단할 수 있는 장소로 이끌었다.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말이다.

고속열차 KTX를 탔다. 열차는 이런 내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단숨에 익산역으로 내달렸다. 등 떠밀리듯 내린 익산역 개찰구 뒤에서는 비둘기호 열차가 너무나도 느긋하게, 너무나도 여유롭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로는 마치 잘 뜨개질 된 둥지 같았다. 비둘기호 열차는 나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더니, 이내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서늘한 통로를 지나 옛 시간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10호차 8번 좌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천천히 평화의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듯 비둘기호가 움직였고, 어느새 유리창 밖으로는 푸른 물결의 대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풍경의 파노라마가 서서히 종료되어갈 무렵, 뇌리를 스쳤던 과거의 기억들을 주섬주섬 마음의 주머니에 새겨 담으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시간은 어디에서 어디로, 얼마나 흘러오고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비둘기호 열차는 상념에 잠긴 나를 조그마한 함열역에 내려주고 나서 다시 어디론가 멀어져 버렸다. 함열역을 나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친근한 빛깔로 채색된 시내버스였다. 시내버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역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태워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나타나곤 했다. 그 사라짐과 나타남의 간격은 마지 운명의 시차 같았다. 어느새 내 차례가 되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나를 싣고 아스팔트 포장 도로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주위가 나무와 산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마치 속세에서 선계로 이어지는 현대판 통로가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달려 버스가 도착한 곳에는 회색 담으로 둘러싸인 채 안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설이 서 있었다. 속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해 놓은 것처럼 그 시설은 철저하게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난의 장소 그리고 고백의 공간]

버스에서 내려 그 거대한 시설을 얼마나 바라다보았을까. 땅을 딛고 서 있는 두 발에서 두 눈으로 현실감각이 짜릿하게 몰려왔다. 다시 눈을 바로 뜬 후, 정면을 응시해 보니 그것은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세트장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익산교도소 세트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익산교도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어진 세트장이기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그곳이 교도소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마음은 촬영장이 아닌 교도소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굵은 글씨로 써진 ‘법 질서 확립’이라는 표어를 내비친 담장은 완벽하게 내부를 가리고 있었다. 시설의 입구에는 ‘교정’이라는 엄격한 두 글자가 도착한 이들을 위한 환영 인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덕분에 입구를 들어서는 이들은 죄지은 것 없이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옥죄인 경험 탓인지는 몰라도, 저 굵고 검은 거대한 철문 입구를 지날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마음에 자리한 죄의 무게를 진실로 판단해 보기 위해 찾은 이곳은 이제 나의 몸을 온전히 구속하게 될 것이었다. 기왕이면 입고 온 바깥의 옷을 버리고 비치된 죄수복으로 환복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몸에 딱 맞을 리가 없는 저 죄수복은 엄혹한 수감의 감각을 얻기에 충분했다. 또한 죄수복에 대한 별다른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었다. 죄수복을 입고 좌우로 도열된 육중한 철문의 감방들 사이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걸을 때마다 철판이 덧대어진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걸어도 모든 걸음은 철과 철이 만들어 내는 쇳소리로 변환되었다. 그곳의 통로를 걸을 때면 일부러 정적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아니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 쇳소리는 죄의 무게에 따른 아주 정직한 소리인 것인지도 모른다.

굳게 닫힌 철문으로 구획이 나뉜 감방을 몇 개나 지났을까, 나는 마침내 「7번방의 선물」을 촬영했던 감방에 수감되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얼마나 웃고 울면서 봤던 영화였던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살다 보면 영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도 얼마든지 찾아온다. 바로 지금이 그런 순간이다. 7번방에 수감된 이가 바로 내가 되는 순간이 언제 또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런 순간이 실제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꽤 좋은 일이다. 여하튼 죄수복을 입고 7번방에 수감된 이는 현재 나 혼자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영화를 촬영했던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혹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다녀간 수많은 이들의 흔적과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 그들 모두와 함께 수감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무판이 덧대어진 감방 바닥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가늘고 기다란 형광등이 조촐하면서도 외롭게 달려 있었다. 외로운 형광등 위를 다시 철망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형광등조차도 옥죄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형광등도 자신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곳과 손으로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에는 철망이 둘러져있었다. 어쩌면 외딴 곳에 고립된 시설로 지어졌기 때문에 교도소가 감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철망을 둘러야 하기 때문에 감옥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슬기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다다른 곳에서 어쩌면 감옥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유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을 옭아맨 죄의 무게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사유하기 위해 발걸음을 디딘 이들에게 이곳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난의 장소이자 사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옥죄인 죄의 무게를 스스로 판단해보고,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비로소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내가 그런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백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한 고백의 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두꺼운 철문 입구를 지나 익산교도소 안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단박에 마주치게 되는 것이 바로 ‘고백버스’라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예사롭지 않은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고백버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그것은 실은 버스가 아니라 트럭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것을 알지만, 교도소라는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너도나도 침묵하니 이 또한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여하튼 고백버스에 올라선 후에는 약간의 비용을 지불한 뒤, 목을 축이거나 마음의 갈증을 해갈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옭아맨 죄에 대해 진지하게 고백할 준비를 끝마칠 수 있게 된다. 살다 보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백버스에 올라 내가 무엇인가를 고백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정말로 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으나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었음을 실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고백을 마치고 나와 교도소 건물 쪽으로 올라가면 오른편 언덕 위로 차가운 수갑이 가득 걸려있는 철망이 보인다. 수갑은 무엇인가에 채워져 있다. 그러나 수갑에 채워진 것은 양손이 아니었다. 수갑에 채워진 것은 바로 우리의 헛된 죄책감과 진솔한 고백이었다. 수갑에 채워진 죄책감과 진심은 양손처럼 서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었고, 그것은 다시 이곳을 다녀간 다른 모든 이들의 수갑과 함께 얽혀지면서, 더 이상 혼자만의 죄책감이자 고백일 수 없는 추억의 철망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고백이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더 이상 고백 수갑이라 부르지 않고 고백 팔찌라 부르기 시작했다. 팔찌가 수갑보다 더 많아지는 날, 어쩌면 사람들은 죄의 감옥이 아니라 추억의 감옥에 기꺼이 갇히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 세상살이의 즐거운 맛을 다시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추억을 고백(go back)하게 만드는 슬기로운 감방 생활]

7번방을 나와 다시 1층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을 내려왔다. 혼자서 걷지 말라는 ‘독보금지’라는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고백 팔찌를 매달아 놓고 감방으로 들어왔던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속세의 고난에 힘겨워 하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이곳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추억과 함께 자발적으로 감옥에 수감된 이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고백 어린 추억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다시 나의 고백 속에서 항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층 통로의 중앙 쪽에는 운동장을 향해 개방되어 있는 커다란 철문이 있다. 철문 밖으로 나가면 운동장에 깔린 잔디의 짙은 풀빛이 두 눈에 새로운 수갑을 채워 준다. 고립되고 좁은 감방 바깥으로 넓고 광활한 운동장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은 수갑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혹은 수감된 이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운동장은 닫힌 공간에 수감된 죄수들이 오전과 오후의 일과 중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로부터 그곳에서 벗어나 열린 공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좁은 감방과 넓은 운동장은 닫힌 삶과 열린 삶에 대해 다시 사유하도록 만들어 준다. 삶이란 물줄기처럼 어느 한 곳에 고이지 않고 항상 흐르는 것이다.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닫힌 곳에서 열린 곳으로, 때로는 그 역으로도 흐른다. 흐르는 삶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시간의 리듬이다. 삶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선율을 발견한다. 내가 스스로 자신을 옥죄인 것이라 생각한 것은 어쩌면 나의 욕심으로 흐르는 시간을 고인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선율의 아름다움을 훼방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바람에 실려왔다.

감방이 있는 건물에서 밖으로 나와 바로 옆 동 건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법정이 있다. 법정 안에서 나는 삶에서 느꼈던 죄책감과 삶에 대한 고백을 피고인석에 가만히 앉혀 본다. 앞에서 가졌던 이런저런 생각을 변론하게 한 다음, 다시 그것을 판사석에 앉혀 본다. 그러자 이번에는 죄의식과 고백이 나를 피고인석에 앉혀 놓고, 내 삶과 내 생각의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결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방청석에 앉혀 본다. 그러자 이번에는 삶에서 찾아오는 죄책감과 고백에 대해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함께 고민하는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나에게 되묻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넓은 바깥의 삶을 가지고 들어와 좁은 감옥 속에서 삶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되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익산교도소에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고백해보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관점으로 자신에 대해 돌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 너무 일방적으로, 너무 쉽게 자신을 판단하고 결론지어 왔다는 것이다.

고립되어 있으면서 개방되어 있는 교도소, 갇힌 곳이면서도 열려진 감방, 열린 곳이면서도 벽으로 둘러싸인 운동장, 그리고 이 모든 닫힘과 열림을 지켜보면서 정작 아무도 혹은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방의 망루들, 판결을 하면서 판결을 당하는 법정,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진지하게 고백하면서 결국은 추억으로 고백[go back]하게 만드는 고백버스. 이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저 익산교도소에서 나는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만약 삶에 대한 고민들과 물음들의 무게로 인해 지치고 힘든 누군가가 이곳 익산교도소를 찾아 성찰과 고백의 시간을 갖는다면, 그 누군가는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같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이 앞서 이곳을 찾아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또 다른 나인 당신을 위해,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당신의 삶과 결속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추억을 남겨두고 갔다는 것을 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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