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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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長春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가연 |
[정의]
개항기 덕유산을 중심으로 거창 지역에서도 활동한 의병장.
[개설]
이장춘(李長春)[1878~1910]은 1907년 덕유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출신이다. 초기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으며, 1908년 초에는 3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무주 주재소,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등을 습격하였다. 1909년에는 문태수(文泰洙)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거창 등 경상남도 지역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10년 4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茂豊面) 현내리(縣內里) 거문돌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활동 사항]
이장춘은 1907년 10월경 덕유산(德裕山)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장춘은 의병장이 되어 동지 이백여 명을 거느리고 전라북도, 거창, 충청도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한때는 김동신(金東臣)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08년 4월 30일, 7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무주군 무풍면 철목동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5월 11일에는 임수안(林遂安) 부대와 연합하여 대덕 청암사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9년 1월 경상남도 안의군 북쪽으로 이전하였고, 5월에 남원군(南原郡) 이문성(里文城) 동북 방면에서 일본 헌병들과 교전 끝에 승리하였다. 같은 해 8월, 덕유산 의병장 문태수와 함께 충청북도 영동(永同), 옥천(沃川) 등지로 이동하여 활약하였으며, 10월에는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을 습격하여 일본 헌병 3명을 납치하는 등 활발한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10년 4월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거문돌 부락에서 일본 헌병과 교전하던 중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장춘에게 1977년에 건국 포장, 1990년에는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