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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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在均 妻 慶州金氏 |
영어공식명칭 | kimssi |
이칭/별칭 | 경주김씨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근대 개항기에 거창 지역에 거주한 열녀.
[개설]
김씨(金氏)는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평산 신씨 신재균(申在均)의 처인데 남편이 급류에 휩쓸려 죽자 남편을 따라 물에 뛰어들어 순절한 열부이다.
[가계]
경주김씨는 김알지에서 연원하지만 시조는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金鳴鍾)과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이다. 이후 도평리(道坪里)에 가까운 연교리(連橋里)의 임실(任實)에 300여 년 전에 경주김씨 수은공파 수은(樹隱) 김충한(金沖韓)의 후손들이 옮겨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서재골[書齋谷]은 약 200년 전 경주김씨 원추(元樞), 극추(極樞), 근추(謹樞) 세 형제가 시묘하던 자리에 서재를 짓고 임실에서 옮겨 살면서 생긴 마을이다. 1800년대 당시 혼례 풍습으로 보면 이웃 마을끼리 결혼을 하는 성향이 많았다. 따라서 열부 신재균의 처 경주김씨의 실제 조상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나 연교리의 경주김씨 수은공파의 후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상도평 마을은 도평 마을 위쪽에 자리하며 임진왜란 때 주상면 남산리에서 평산 신씨가 옮겨 와서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활동 사항]
경주김씨는 평산인 신재균의 아내로 거창 주상면 도평리 상도평 마을에 살았다. 1872년 여름에 폭우로 물이 불어났다. 남편이 들에 일을 하러 나갔는데 황강천의 큰물을 건너려다가 급류에 휩싸여 떠내려가 익사하게 되었다.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을 따라 물에 뛰어들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나라에서 이 일을 듣고 아름답게 여겨 1879년에 정려를 내렸다. 상도평 마을 입구 도로 가에 정려가 세워져 있다. 정려에는 ‘열부 신재균 처 경주김씨 정려(烈婦申在均妻慶州金氏旌閭)’라고 새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1879년에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