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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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이거나 진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유가(儒家)에서는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 하여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가장 우선시되며 근원적인 것이 효 사상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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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아버지는 둔곡(遯谷) 곽세익(郭世翼)이다. 곽휘지(郭徽之)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병환에 시달리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자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었고, 상을 당하자 시묘를 살았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도 역시 묘소를 잘 지켰다. 상을 마친 뒤에는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한수재(寒水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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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기선(金基先)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여든 살이 된 어머니가 실명하여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레를 만들어 매일처럼 태우고 다니며 운동을 시켜 드렸다. 또한 날마다 천신께 어머니의 건강을 빌어 어머니가 아흔까지 장수하도록 하였다. 어머니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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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수(字修),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김천익(金天益)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김덕숭(金德崇)[1373~1448]은 지금의 황해도 개성[옛 송도]에서 태어났다. 고려가 망하자 송도판윤으로 있던 아버지를 따라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추자(楸子)마을에 정착하였다. 1393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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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수은(樹隠) 김중한(金中漢)의 13세손이다. 김두석(金斗錫)은 평생 동안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자신의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겨울이면 아버지의 옷을 따뜻하게 입혀 드렸고,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면서 간호를 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김두석의 효성을 관찰사에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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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승(伯承). 아버지는 문천군수 김학민(金学敏)이다. 김병구(金秉九)[1809~1871]는 1840년(헌종 6) 성균진사에 장원급제하였다. 아버지가 여러 달 동안 병이 위중하여 입맛을 잃고 먹지 못하다가, 2월 한겨울 어느 날 살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김병구는 살구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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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사눌(金師訥)은 부모님이 병중에 있을 때 변을 맛보며 치료했으며,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먹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간 시묘를 했다. 고을 원님이 김사눌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자 표창을 하려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자 원님은 “산 아래 있는 사람이 산 위에 올라가 말하기를 자기가 제일 높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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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13세손이다. 김상환(金相煥)은 부모님이 병들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세가 위중하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에 주위의 선비들이 영읍(営邑)에 김상환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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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용발(金龍發)은 아버지가 병환 중에 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추운 겨울 얼음을 깨고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끓여 드시게 하니 차도가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게 하였다. 유림들이 여러 차례 영읍(営邑)에 김용발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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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김의조(金義祚)는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이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되살아나게 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에 동삼(童蔘)이 좋다고 했는데도 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하자 동삼이 생겼고, 물고기를 구할 때는 잉어가 냇가로 뛰쳐나와 효행에 보답하였다. 이렇게 구한 동삼과 잉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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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정길(金廷佶)[1581~?]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12세의 나이로 왜병에게 사로잡혔다. 포로가 된 그가 사흘 밤낮을 울자, 왜병의 장수가 사유를 물었다. 이에 김정길은 고향에 살고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왜병 장수가 글을 아느냐고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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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영조 때 진천 출신의 이름난 효자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1373~1448]의 후손이다. 김종철(金宗喆)[1755~1817]은 타고난 재주와 슬기가 뛰어나고 성격이 엄정했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평상시에도 부모가 즐거워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항시 부모 곁을 지켰으며,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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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의 12세손이며, 판서 김유(金濡)의 10세손이다. 김창덕(金昌德)은 부모님이 병환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을 했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인근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에 군내 유림들이 감사에게 김창덕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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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낙진당(樂真堂),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은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1642년(인조 2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82년(숙종 8) 참봉 벼슬을 내렸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언제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도덕을 실천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모님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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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박은(朴訔)의 후손이다. 박건양(朴建陽)[1891~1948]은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탓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만년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병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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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윤갑(朴潤甲)은 태어날 때부터 지극한 효심이 있었다. 열 살 되던 해 할머니가 이상한 병에 걸렸는데, 의원이 뱀 기름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겨울철이라 뱀을 구할 길이 막막했다. 박윤갑이 안타까운 마음에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홀연 커다란 뱀이 나타나, 이를 잡아 달여서 먹이니 할머니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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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박형원(朴逈源)은 본관이 반남(潘南)으로, 타고날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려서도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으며, 무슨 일이든 부모의 허락을 기다린 후에 행하였다. 부모님의 병환 중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좋은 약을 구하는 데 힘을 쏟았으며, 병수발을 할 때는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정성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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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병조판서 변준(卞儁)의 후손이다. 변영우(卞榮禑)는 어려서부터 행동이 의젓하였고, 효성을 다하여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중에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꿩을 구하기 어려워 울고 있자 꿩이 집안으로 날아들었다. 이 꿩을 잡아서 먹인 후 어머니의 병이 차츰 나아졌다. 서너 달이 지난 뒤 어머니가 다시 아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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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서한순(徐翰淳)[1848~1909]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예의 바르며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뛰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마저 거르는 때가 많았으나 부모에 대한 봉양을 정성껏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는데 겨울에는 방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에도 시간이 어긋나지 않았다. 장성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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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소(宋玿)이다. 송광도(宋匡度)는 정용낭장(精勇郎將)을 지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어찌나 지극했던지 중국 황제에게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정려는 본래 진천군 산정촌의 묘 아래 있었으나 1636년(인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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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신현구(申鉉九)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뜻을 따랐고, 언제나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또한 한 푼의 돈이나 한 말의 쌀이라도 반드시 어버이에게 여쭌 뒤 허락을 받고 사용했으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를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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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묵정재(墨靜齋). 아버지는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신한장(申漢章)이다. 신협(申俠)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부모가 병이 나시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이고, 다리의 살을 베어 먹이기도 하였다.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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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경(洛卿), 호는 악포(樂圃).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기중(安驥中)[1865~?]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버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르는 법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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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삼(文三), 호는 가산(可山). 진사(進士) 안형(安泂)의 9세손이다. 안상욱(安商郁)은 상중에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장성하였다. 할아버지가 병중에 누워 계실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병간하면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지어 왔고, 약을 달일 때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했으며, 어머니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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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양주문(楊周文)은 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를 다하였다. 부모를 뵙기 위해 비바람을 무릅쓰고 밤마다 10여 리를 걸어 다녔다. 밤에 눈길을 걸을 때는 호랑이가 따르며 지켜 주었다. 양주문이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가 앞뜰에 와서 앉아 있었으며, 호랑이의 눈빛이 하늘에 비쳐 집안이 환하였다. 새벽녘에 닭이 울자 밤새 집안을 환하게 비추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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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산(谷山). 진사 연정희(延廷禧)의 8세손이다. 연정기(延廷夔)는 아흔 살의 아버지가 천식증이 생겼는데, 의원이 술이 좋다고 하자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처럼 술을 구해다 드렸다. 겨울에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냇가에 나가 하늘에 빌어 잉어 세 마리를 구해다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원하여 사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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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참찬관(參贊官) 오대남(呉大男)의 고손자이다. 오형(吳珩)[1710~?]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뜻을 두고 극진하게 모셨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시묘를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오행의 효행에 감탄하여 마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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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정수(静叟) 문정공(文貞公) 유인숙(柳仁淑)의 7세손이다. 유심(柳甚)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집에 있을 때도 항상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어 군내 유림들이 고을의 효자라 하여 여러 차례 고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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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8세손이다. 유심원(柳心源)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어른스러웠는데, 일찍이 15세 때부터 부모님께 어른으로서 하는 효도를 행했다. 할머니가 70세가 되어 괴질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을 잡아먹는 메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그물을 들고나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메기 한 마리를 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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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경명(景明), 호는 태소재(太素齋). 할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을 지낸 유명웅(兪命雄)이고, 아버지는 공릉참봉 유묵기(兪黙基)이다.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군수 이명승(李明升)의 딸이다. 유언순(兪彦淳)[1715~1748]은 7세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음에도 장례를 치르는 태도가 어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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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유인영(柳寅暎)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지만, 병자년 그해 가뭄이 극심해 냇물이 모두 말라 물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 멀리 큰물에 가면 물고기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병석의 아버지를 홀로 두고 멀리 갈 수 없어 하늘에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이튿날 집 앞 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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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사헌부집의 유창국(柳昌国)의 6세손이다. 유진풍(柳鎮豊)[1773~?]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그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물고기를 구해 주었다. 유진풍은 이 물고기를 어머니에게 공양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 차례 영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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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효자 유희원(柳希源)[1769~?]의 동생이다. 유학원(柳学源)은 형 유희원처럼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를 잘 섬기고 형의 뜻에 잘 따라 주변 사람들이 일문쌍효(一門䉶孝)라 칭송하였다. 유림들이 영읍에 유학원의 효행에 대한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教官)이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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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진주군(晋州君) 유번지(柳藩之)의 후손이다. 유환익(柳煥益)은 집안이 곤궁하여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하며 부모 공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직접 떠서 드시게 하였다. 병수발을 든 지 십여 년이 지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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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엄동설한에도 하늘에 기도하여 잉어를 구해다 봉양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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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알려진 윤석보(尹碩輔)의 10세손이다. 윤범국(尹範國)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 조씨가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생선이 제일 좋다고 말하였다. 추운 겨울이라 냇가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물고기를 구할 길이 없자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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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서 현대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효자. 이교영(李敎永)은 본관이 성주(星州)로, 1890년(고종 27) 외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태어나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이교영은 평소 효성이 지극했는데, 42세가 되던 1931년 3월 어머니가 음성의 친정에 갔다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한 달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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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덕수(李德壽)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님이 병환 중에는 직접 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병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낸 뒤 그 피를 먹여서 살려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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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사현(李思賢)은 어려서부터 효자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살았으며, 효행으로 복호(復戶)[조선시대 충신,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 학문에도 뛰어났으며,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과도 가깝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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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헌(可軒). 할아버지는 만오공 이후연(李厚淵)이다. 이석하(李錫夏)는 18세 되던 해 할아버지 이후연의 뜻에 따라 청야(青野) 임익상(林翼常)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면서 책에서 본 것이나 실제로 본 좋은 행동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으며, 선행이나 좋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진 일을 하는 데 전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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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뇌연(雷淵), 자는 문계(文階)·태초(太初), 호는 연재(衍齋). 세종의 별자(別子)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위현감 이의화(李義和)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유언(兪彦)의 손녀이다. 이승연(李升淵)[1767~1829]은 유서 깊은 가정에서 시(詩)와 예(禮)의 교육을 받아 선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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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서암처사(西巖處士). 청허당(淸虛當) 이거이(李居易)의 8세손이다.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따르면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에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승종(李承宗)[1574~?]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행과 문장이 탁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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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장(子張).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고손이다. 이인(李仁)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송두리에서 태어났다.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천(鄕薦)을 받아 참봉(參奉)과 주부(主溥)의 벼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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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주(光州). 대사성 이중호(李仲虎)의 7세손이자, 이조참판 이발(李潑)의 6세손이다. 이정휘(李廷徽)는 어머니가 종기가 심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5~6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뽑았으나 병세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낸 피를 먹여 완쾌하게 하였다. 그 후 모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지극정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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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치영(稚英). 진사(進士) 이몽길(李夢吉)의 후손이다.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대에 벼슬길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갑자보(甲子譜)』 세록(世錄) 편에 의하면 능란한 외교술로 거란[契丹]과 외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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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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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이필용(李必容)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상을 당했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불이 나서 사당(祠堂)까지 불이 번지고 말았다. 이에 이필용이 큰소리로 천신(天神)을 부르자, 세찬 바람이 그치고 불꽃이 잦아들어 비록 사당은 불탔으나 신주(神主)는 온전하였다. 어느 날, 이필용이 볼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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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3세손이다. 만오(晩悟) 이후연(李厚淵)이 중손(中孫)이다. 이호중(李昊中)이 공주 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의 모친 병이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가서 잉어를 구해 드려라”고 말하였다. 그 길로 집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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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오(晩悟).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졸옹(拙翁) 이호중(李昊中)의 중손(中孫)이다. 이후연(李厚淵)은 신와 정재경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학문의 중심점을 캐어서 연구하였고 지식과 견문이 넓었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깨달은 바도 투철하여 정재경이 큰일을 맡을 만한 인물[大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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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6세손이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이희(李熺)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어도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항상 부모의 모든 것을 친히 보살폈다. 부모의 상을 당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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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이다. 임경석(林慶錫)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죽만 먹으면서 3년 상을 치렀으나, 슬픔이 지나쳐 몸을 상하게 되어 마침내 세상을 떠나니 군(郡)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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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常山林氏)[진천임씨(鎭川林氏)]의 시조로 지금도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경언(林慶彦)[1761~?]은 아버지가 종기를 앓고 있을 때 침과 뜸이 효험이 없자 독혈을 빨아내고 밤에는 소금물로 씻기를 한 달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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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슬하에 가문의 쌍효(雙孝)라 불리는 임호철(林昊喆)과 임우철(林禹喆) 형제를 두었다. 임광언(林光彦)[1794~?]은 어렸을 때부터 단정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침착하고 무게가 있었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남다른 점이 있었다. 9세 때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발을 구르며 통곡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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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광윤(林光潤)[1734~?]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이 같은 효행이 알려져 고을에서 천거를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군(郡)의 유림들이 모두 안타까워하였다. 족보에 임광윤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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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충신 임현(林賢)이다. 임봉거(林鳳擧)는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박학하고 학문을 즐기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도덕을 실천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모든 행동이 민첩하고 독실하였으며, 듣고 보는 것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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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할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버지는 임재(林榟)이다. 임봉래(林鳳來)는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였고, 상을 당하여서는 극진한 예를 다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더불어 삼세효자(三世孝子)로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여러 번 관에 천거하였으나 정려는 내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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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 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 임광언(林光彦)이며, 임호철(林昊喆)의 동생이다. 임우철(林禹喆)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버이를 모시는 데 형 임호철과 더불어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을 섬기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을 당해서는 예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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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들은 임재(林榟)이고, 손자는 임봉래(林鳳來)이다. 임유원(林有元)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하였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하였다. 아들 임재와 손자 임봉래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삼대(三代)가 모두 효성스럽다고 불렸다. 고을 사람들이 효성에 감복하여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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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진천임씨(鎭川林氏)[상산임씨(常山林氏)]의 시조인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을엽(林乙葉)은 아버지가 병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천신(天神)이 얼음에 채운 물고기를 알려 주어 아버지를 봉양하였고,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도 숲 속에서 산신령을 만나 산돼지를 얻어 끓여 드렸다.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이 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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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중시조 임연(林衍)의 16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유원(林有元)이고, 아들은 임봉래(任鳳來)이다. 임제(林梯)는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간병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 아버지 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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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희는 상산임씨의 시조로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구산동]를 중심으로 많이 살고 있다. 임정석(林鼎錫)[179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병환이 갑자기 위독해져서 약을 쓸 수 없게 되어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에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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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증조할아버지는 임광언(林光彦)이고,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우철(林禹喆)이다. 임정수(林正洙)는 일찍이 어버이를 섬기는 법도를 알아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법도에 맞게 행동했다. 어릴 때 도적이 집에 들어와 어버이를 위협하니 내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와, 칼날을 무릅쓰면서 어버이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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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채근(林彩根)은 아버지가 중병이 들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고,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는 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를 하면서 상례에 어긋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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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상산백(常山伯) 임희(林曦)의 후손이다. 임호근(林浩根)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자 손가락의 피를 내어 마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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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천(鎭川)[또는 상산(常山)].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난 임광언(林光彦)이고, 동생으로 역시 효자인 임우철(林禹喆)이 있다. 임호철(林昊喆)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어버이를 모시는 데 지극하여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근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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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옥천(沃川). 호는 쌍암(雙岩). 아버지는 상주목사를 지낸 전팽령(全彭齡)이다. 전엽(全燁)[1505~?]은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별세하자 60세 가까운 늙은 몸으로 3년간 시묘하면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시묘하는 도중에 산소 부근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하얀색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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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습재(時習齋).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아들 정창환(鄭昌煥) 역시 효자이다. 정도(鄭棹)는 화재가 나서 불이 사당에까지 번지자 천신에게 기도를 올려 불이 꺼지게 하였고, 선대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서 꿩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꿩이 떨어지는 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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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고산(孤山).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다. 정방광(鄭邦絖)[1471~1513]은 경기도 안성에서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방동으로 이전한 입향조(入鄕祖)인데, 정봉남과 정황남이 그의 증손이다. 정봉남(鄭鳳男)[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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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고, 아버지는 정훈이다. 동생은 정익경(鄭益慶)이다. 정이경(鄭履慶)은 학문이 높고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고, 효행 또한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자 밤에 천신(天神)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린 뒤 손가락의 피를 내어 병을 낫게 하였다.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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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실(公實), 호는 신와(愼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누항(陋巷) 정용환(鄭龍煥)이며, 조암(照庵) 정해필(鄭海弼)과 『상산지(常山誌)』를 쓴 정우섭(鄭友燮)이 그의 손자이다. 정재경(鄭在褧)[1780~?]의 아버지가 그림 속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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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소은(素隱).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이다. 정재형(鄭在衡)은 오로지 경학(經學)을 숭상하였으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는 기록이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전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학문에 더욱 힘써 여러 번 향공(鄕貢)에 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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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시조인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정봉남(鄭鳳男)이고, 할아버지는 정이경(鄭履慶)이다. 시조 지백호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좌명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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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일(延日).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효자 정도(鄭棹)이다. 정창환(鄭昌煥)이 소년 시절 어느 날 마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호랑이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이불로 어머니를 가리면서, “우리 어머니를 해치면 안 된다.”고 큰소리로 꾸짖으니 호랑이도 머리를 끄덕이고 물러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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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조암(照庵).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고, 아버지는 정선(鄭鍌)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 홍대욱(洪大勖)의 딸이다.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양육되었다. 효행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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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효자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혁경(鄭爀慶)은 10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을 만나자 급히 어머니를 업어 보호하고 대신 자신이 죽기를 청하며 다투니, 왜군이 경외하여 차마 해치지 못하였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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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회촌(晦村).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며, 입향조인 정방광(鄭邦絖)의 증손이다. 형은 정봉남(鄭鳳男)이다. 정황남(鄭凰男)은 백원서원(百源書院)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형 정봉남과 함께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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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산행와(山行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정회(鄭淮)[1805~?]는 일찍이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를 섬기기에 효성을 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방안을 따뜻하게 하거나 서늘하게 하는 일까지 친히 보살폈다. 어머니의 비위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려고 애를 썼고, 아침저녁으로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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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 평양조씨 시조 조춘(趙椿)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고려 때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된 인물이다. 조춘은 상원(祥原)에 정착하여 4세손까지 내려오다가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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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平康). 순당(蓴塘) 채진형(蔡震亨)[1579~1659]의 후손이다. 채진형은 본래 서울에 살았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꿈속에서 피난가라는 계시를 받고 피신하여 진천 땅 어느 곳에 정착하고,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찾은 마을이므로 마을 이름을 몽촌(夢村)이라 했다고 한다. 현재 마을을 이룰 당시 심었던 은행나무는 수령 3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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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충절공(忠節公) 최영유(崔永濡)의 8세손이다. 화순최씨(和順崔氏)의 시조는 최세기(崔世基)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그가 화순의 옛 이름인 오산(烏山)에 봉해짐으로써 화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최세기와 같이 몽골군의 침입 때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부(崔傅)를 함께 시조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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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며, 효자 최사립(崔斯立)의 증손이다. 최사립 이후 최면성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최면성(崔勉誠)은 사마시(司馬試)의 양과, 즉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대의 혼란기를 맞이하여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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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6세손이다. 아들은 최덕순(崔德恂)이고, 손자는 최기(崔基)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사립(崔斯立)은 군수를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중종 때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아들인 최덕순도 군수를 지냈고 효성이 지극하여 선조 때에 정문이 섰다. 손자 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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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여섯째 아들이다. 최유경은 1406년(태종 6) 참찬의정부사가 된 뒤 사임하고 진천군 초평면 죽정마을로 내려와 스스로 죽정(竹亭)이라 부르며 한가로이 여생을 보냈다. 최사흥(崔士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청도 대흥현감무로 있을 때 부친상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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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지군사(知郡事) 최극함(崔克咸)이다. 최제두(崔濟斗)가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제두는 10세에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할머니가 마마를 앓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과 함께 마시게 하였는데, 손가락을 끊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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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최주민(崔柱旻)이다. 최종운(崔宗運)이 태어난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은 전주최씨의 주요 세거지이다. 최종운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너무 어려서 상을 치르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다가 어머니의 사갑(死甲)을 맞던 해에 3년 복을 추복(追服)하였다. 또한 아버지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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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최기(崔基)이다. 최주민(崔柱旻)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작은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 완쾌하게 하였고, 손수 약맛을 보아 봉양하였다. 숙종(肅宗) 때 정려가 내려졌다. 최주민의 할아버지 최기, 고조할아버지 최덕순, 증조할아버지 최사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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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하여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며 효자.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성습(聖習)이다. 조선왕조 개국원종공신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3세손으로 부친은 최수남(崔守南)이다. 진천에 거주하였으며 1852년(철종 3) 식년 생원시에 56세로 합격하였다.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어머니가 숙환을 앓게 되자 몇 해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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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행(景行), 호는 동우(東愚).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의 15세손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출생한 한경석(韓景錫)[1878~1945]은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 묘소 아래에 여막을 짓고 지냈다. 농사를 짓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모친 봉양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언제나 유순한 마음으로 모친의...
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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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효부. 본관은 정선(旌善). 승정원좌승지에 증직이 된 김우(金瑀)의 부인이다. 정선전씨(旌善全氏)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켜 부모를 효로 대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집안의 화목에 힘써 인근의 본보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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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남편은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태정(金台鼎)이다. 시아버지가 선천적으로 병이 있었는데 매우 심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달여 먹여 소생케 하였다. 여러 차례 지방 장관에게 추천되었으며, 암행어사로부터 상(賞)으로 비단옷을 받았다. 유림들이 글을 내어 감사(監司)의 포제(襃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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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평양조씨(平壤趙氏)로 충청병사(忠淸兵使)를 지낸 조맹손(趙孟孫)의 후손 조한승(趙漢昇)이다. 박금년(朴今年)은 시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였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시아버지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극진하게 3년 상을 치렀다. 박금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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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현모. 민씨의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민경상(閔景祥)이다. 남편은 본관이 순흥(順興)인 안기중(安驥中)[1865~1892]으로, 안형(安逈)의 8세손이다. 아들은 안상욱(安商郁)으로 도회의원과 소수서원장·운곡서원장·묵정서원장·백진서원장과 군유도회장을 역임하였다. 민씨는 남편 안기중이 27세에 별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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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유계열(柳癸烈)은 남편 이규창(李奎昌)이 전사하자 시부모를 위안하고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시어머니가 괴질에 걸리자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기도하여 3개월이 지나자 차도를 보았다고 『진천군지』와 『진천향토지』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다. 1902년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1903년 2월 전국선행자표창위원회의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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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이씨의 나이 20세 때 남편 이근석(李根錫)이 죽었다. 그 후 이씨는 머리도 덥수룩하게 하고 옷도 좋은 옷은 입지 않는 등 몸단장에 신경 쓰지 않고 시부모만을 기쁘게 해드리며 극진히 효도하였다. 5~6년이 지나서 시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불과 3개월 만에 시어머니마저 죽었다. 이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시동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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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이종연(李鍾淵)의 처 박씨는 시아버지가 종기로 자리에 눕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서 낫게 하였으며, 담종이 생겨서 3개월 동안 거동을 못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이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상장제용(喪葬祭用)을 마련하여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얼마 후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고 물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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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양씨는 16세에 이호주(李鎬周)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양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시부모와 남편이 연이어 세상을 뜨면서 20세 때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씨가 절개를 지키며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웃 마을의 장씨(張氏)가 양씨가 과부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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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현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안동김씨는 17세에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16세손인 정순형(鄭淳亨)과 결혼하였다. 그 후 안동김씨는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순종으로 받들었는데, 1년도 못 되어 시아버지가 죽고, 다시 2년 뒤에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동김씨는 즉시 남편을 따르려 했으나 시조부모와 시어머니가 손을 잡고...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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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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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순흥(順興). 남편은 김녕김씨(金寧金氏) 김경세(金景世)[?~1636]로 인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주박(主薄)의 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남한산성 방어군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다. 김경세 처 순흥안씨는 병자호란으로 남편이 전장에 나가게 되자 당나라에서 나는 삼중으로 된 붉은 실로 남편의 옷섶을 꿰매어 표시를 하였다. 남편이 전쟁에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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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업복(金業福) 처 이씨는 20세에 결혼하여 가난한 시집 형편에도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시아버지 김순악(金巡岳)이 괴질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하루를 더 연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너무나 슬퍼하여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남편 김업복 마저 갑자기 병이 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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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최씨는 천성이 조용하고 정숙하였고, 10세 전부터 문밖출입을 삼가하며 오로지 부모를 섬기는 일에만 정성을 다했다. 12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퍼하며 상례를 치르는 행동이 어른과 같았다. 18세에 김인진(金鱗鎭)과 혼인하여 김씨 집안으로 출가한 후에는 부도(婦道)를 다하여 남편과 시부모를 받들었다. 수년 후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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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열녀. 김재룡(金再龍) 부부는 어느 해 여름 큰비가 내려 장마가 지고 마을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물난리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물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저는 죽어도 좋지만 군자만큼은 살도록 도와주소서!”라며 침착하게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자 물이 곧바로 빠지기 시작하여 김재룡 부부는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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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김태원(金泰元)이다. 김태원 처 이씨는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에 피를 내어 약에 타서 먹이었고, 북두칠성에 지성을 다하여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에 군(郡)에서 포상하고, 군의 유림들이 감사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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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달성(達成). 남편은 의령남씨(宜寧南氏) 남병덕(南秉德)이다. 남병덕 처 달성서씨는 남편이 직업 때문에 수백 리 밖에 나가 있음에도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하루는 서씨가 일찍 일어나서 시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군자(君子)가 새 옷을 입고 문을 나서면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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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정효창(鄭孝昌)이다. 말즐비(末즐非)[끝비]는 남편 정효창이 수군으로 있다가 사망하자 6년 동안 한결같이 상복을 입고 슬퍼하면서, 음식을 갖추어 시어머니에게 올린 뒤 남편 제사를 지냈다. 1527년(중종 22)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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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알 수 없으며, 남편은 손세업(孫世業)이다. 이씨는 남편 손세업이 죽자 슬프게 곡을 하다가 상여를 보낸 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자결하였다.충청도와 진천군에서 포상을 하고, 왕에게 추천을 하여 1883년(고종 20) 정려가 내려져 정문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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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몽계(夢溪) 한희적(韓希迪)의 후손인 한정준(韓廷儁)이다. 남편은 신의양(申義養)으로 1795년(정조 19)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선전관에 올랐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9세손이다. 신의양 처 청주한씨[1778~1804]는 남편이 죽자 장례를 마친 뒤 남편의 허리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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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씨의 남편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이름은 유만엽(柳萬葉)이다.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게 한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이 공로로 고향인 유주(儒州)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으면서 유주, 즉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지역인 문화를 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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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최준(崔濬)이고, 오빠는 최유연(崔有淵)이며, 남편은 유형국(柳亨國)이다. 유형국 처 해주최씨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살면서 1636년(인조 14) 한양에 있는 친정으로 근친을 갔다가 병자호란을 만나자, 승지를 지내던 오빠 최유연이 왕자와 비빈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갈 때 함께 행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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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민회(李敏會) 처 최씨(崔氏)는 23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바로 남편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는 4년동안 지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드렸으며 산나물을 먹고 싶다 하자 눈 쌓인 산에 들어가 나무의 눈을 얻어 국을 끓여드리고, 또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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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이성문(李成文)이다. 이성문의 처 경주정씨[1707~1731]는 어릴 때부터 천자(天姿)가 정숙하였고 혼인해서는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여 봉양하고 남편을 예로서 섬기었다. 남편이 난을 막으러 나갈 때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라고 하였다. 남편이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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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남편은 평택(平澤)이 본관인 임경운(林景雲)이다.임경운(林景雲) 처 이씨(李氏)는 20세에 남편이 사망하자 여러 날 음식을 먹지 않아서 사경을 헤매다가 시부모를 생각하여 눈물을 거두고 시부모를 위로하며 정성을 다하였다. 시부모께 음식을 드리고 조금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고 남편 장일에는 제사에 쓸 물건과 모든 예절을 스스로 돌보고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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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은진(恩津). 조선 후기 호조참판을 지낸 남편 임대철은 본관이 상산(常山)이며, 1845년(헌종 11)에 별세하였다. 임대철(林大喆) 처 은진송씨(恩津宋氏)[?~1845]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베 끈으로 목을 매어 향년 30세의 나이로 남편을 따라갔다. 감사 이승수가 은진송씨의 절개에 대한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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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평산(平山). 남편 최혼(崔焜)은 지사(知事) 최극성(崔克誠)의 손자로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신씨는 남편 최혼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는 등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죽자 만 1년 뒤 기제사를 마친 후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1699년(숙종 25)...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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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