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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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地圖星州 |
이칭/별칭 | 『비변사인방안지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 지도첩으로, 채색 필사본이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제4책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이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므로 이 지도책은 1767년 이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 5책 「하동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1745년(영조 21)에 이전된 곳으로 표시되어 있어 이 지도책이 1745년 이후의 상황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영남지도』는 영조 연간인 1745~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및 구성]
본 지도첩은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4책의 뒷부분에는 1871년에 제작된 함경북도의 「무이진도형(撫夷鎭圖形)」이 덧붙여져 있다. 제 2책의 「경주지도(慶州地圖)」, 제 6책의 「하양지도(河陽地圖)」 등의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1리 간격의 눈금이 있는 방안지에 지도를 그렸으며, 범례를 두어 특정한 정보를 기호화하여 표시하였다. 각면은 적색선 네모 안에 바탕은 노란색이며, 역은 청색선 네모 안에 붉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지도 바깥에 주기한 산과 하천 및 서원이나 사찰 등 주요 시설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특징]
『영남지도』 내에 수록된 성주목 지도는 서쪽(酉)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그 이유는 읍치가 동향을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가운데에 지도를 두고, 위와 좌우에 민호, 전결, ‘곡물총수(穀物摠數)’, ‘군병총수(軍兵摠數)’, 읍성 둘레[6,755척]를 주기(注記)하였다. 이어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627리인 사실과 인접 고을·면·향교·관왕묘·서원·사(祠)·영당·창고·산성·봉대·역·사(寺)·진(津)·천(川)·참(站)까지 읍치로부터의 방위와 관문으로부터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선석산에는 세종의 8대군 태실을 봉안하였고, 태봉산에는 태종의 태실을 봉안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답계역·안언역·무계역에는 각 역이 보유한 말의 수를 기재하였으며, 참은 무계참과 쌍계사참을 표기하였다. 민호 1만 2721호와 서울까지의 거리는 『해동지도』와 동일한 수치이다. 『해동지도』의 경우 지도 바깥의 주기(注記)에는 면(面), 지도 내에서는 방(坊)이라고 표시하였으나, 이 지도에서는 모두 면으로 일치시켰다.
[의의와 평가]
『영남지도』 「성주」 는 채색 지도에 비하여 방안식 지도이므로, 조선 후기 성주목 관내의 산천과 지역 및 주요 시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