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244 |
---|---|
한자 | 何瑟羅州 |
영어음역 | Haseullaju |
이칭/별칭 | 아슬라주(阿瑟羅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신라시대 경상북도 울릉군을 관할한 지방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의 하나인 주(州)는 505년(지증왕 6) 삼척 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둔 것이 처음이다. 주는 통일 이전과 이후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통일 이전의 주는 실직주·사벌주(沙伐州)[현 상주]·비자벌주(比子伐州)[현 창녕]·남천주(南川州)[현 이천] 등 지명을 붙인 경우와 상주(上州)·하주(下州)·신주(新州) 등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한 경우로 구분된다.
처음의 주는 협소한 지명이 덧붙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대외 팽창 과정에 따라 추진·이동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군사적 성격이 강한 군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군단장적 성격의 군주(軍主)가 파견되었다.
[관련기록]
우산국에 대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지증마립간] 13년 6월에 우산국이 귀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해도에 있어 혹은 울릉도라고도 하거니와, 땅이 사방 100리로, 천험을 믿고 신라에 귀복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가 되어 생각하되,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 위세로써 내복하게 하기는 어려우나 계교를 써서 항복받을 수는 있다’고 하고, 이에 목우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맹수를 놓아 밟아 죽이겠다’고 하므로, 그들이 두려워하며 곧 항복하였다.(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 歲以土宜爲貢 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 或名鬱陵島 地方一百里 恃嶮不服 伊湌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謂 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抵其國海岸 誑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踏殺之 國人恐懼 則降)”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 권44 열전 이사부조]
“아슬라주[지금의 명주]; 동해 중에 순풍 이틀거리에 우릉도[지금은 우릉이라고 쓴다]가 있으니 주위가 26,730보이다. 도이가 그 해수의 깊음을 믿고 교만하여 조공하지 않거늘, 왕이 이찬 박이종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치게 하였다. 이종이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에 싣고 위협해 말하되,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놓으리라’고 하니, 도이가 두려워서 항복하였다. 이종을 포상하여 그 주의 장관으로 삼았다.(阿瑟羅州〈今溟州〉 東海中 便風二日程有于陵島〈今作羽陵〉 周迴二萬六千七百三十步 島夷恃其水深 驕傲不臣 王命伊喰朴伊宗將兵討之 宗作木偶師子 載於大艦之上 威之云 不降則放此獸 島夷畏降 賞伊宗爲州伯)” [『삼국유사』권1 기이1 지철로왕조]
[변천]
본래는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또는 하슬라]이었으나 뒤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5세기 후반에는 신라의 성주(城主)가 주둔하고 있었다. 468년(자비마립간 11)에는 그 주민들을 징발하여 니하(泥河)[현 강릉 오십천]에 성을 쌓기도 하였다.
6세기 초에 주(州)가 설치되었고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군주로 파견되어 우산국(于山國)을 병합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에 소경(小京)이 설치된 적이 있으나, 658년(무열왕 5)에는 하슬라 지역이 말갈(靺鞨)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여 소경을 없애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이것은 하슬라 지역이 동해안으로 진출하는 군사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컸음을 보여준다. 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명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