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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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億 |
영어음역 | Gu 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삼척영장을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도원수파(都元帥派)의 파조(派祖) 구성노(具成老)의 12대손이다. 10대조 구치관(具致寬)은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좌리공신(左翼佐理功臣)에 올랐으며, 8대조 구장손(具長孫)은 종친부 전부(典簿)를 역임하였다. 이후 구억의 가문은 음서를 통하여 문반의 대열에 있었지만, 구억의 할아버지부터 무과로 진출하여 무반 가문의 틀을 마련하였다.
할아버지 구훤은 1651년(효종 2)에 무과로 출사(出仕)하여 흥해군수를 지냈으며, 아버지 구우익(具右翼)은 1676년(숙종 2)에 무과로 출사하여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이후에 좌찬성으로 증직되었다. 구우익은 안동권씨(安東權氏)와 진주류씨(晉州柳氏) 사이에서 다섯 아들을 두었으며, 양자로 빠진 둘째 구욱을 제외한 네 아들이 모두 무과로 출사하였다. 구억은 다섯 형제 중 막내였다. 구억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구세적(具世勣)과 셋째 구세혁(具世赫)이 무과로 출사하여 도총관과 군수를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1791년(숙종 4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28년(영조 4)에는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 삼척영장으로 수토관이 되어 군관 최린(崔燐)과 왜학(倭學) 김선의(金善義) 등과 함께 울릉도를 수토하고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송학리 7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병조판서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