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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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命善 |
영어음역 | Seo Myeongseon |
이칭/별칭 | 계중(繼仲),귀천(歸泉),동원(桐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개설]
18세기 중엽부터 울릉도 인삼이 잠상(潛商)과 관원들에 의하여 밀채(密採)되어 유통되었다. 이에 1769년(영조 45) 11월에 삼척영장 서노수가 처벌되었고, 동년 12월 강원감사 홍명한(洪名漢)은 탄핵을 당하였다.
[가계]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계중(繼仲), 호는 귀천(歸泉)과 동원(桐源).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참찬(參贊) 서문유(徐文裕)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종옥(徐宗玉)이며, 어머니는 이수(李藪)의 딸이다.
[활동사항]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교리에 부임하였다가, 다음날 영조의 특명에 의해서 홍문관교리가 되었다. 1764년(영조 40) 홍문관 관원들이 올린 상소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홍낙명(洪樂命) 등 8명과 함께 갑산부에 일시 유배되었으나, 곧 재기용되어 지평·헌납·부교리·풍산만호·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767년(영조 43) 지제교(知製敎)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우등하여 말을 하사받았고, 중시(重試)에서 병과로 급제하기도 하였다. 이후 부교리·승지를 거쳐 1770년(영조 46)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울릉도에서 채삼(採蔘)을 금지하라는 영조의 명을 받아 이행하였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대사헌·승지·부제학을 역임하고 이조참판이 되었다.
1775년(영조 51) 일시 한직으로 물러났으나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홍인한(洪麟漢) 일파를 탄핵하여 세손의 대리청정을 시행할 수 있도록 크게 노력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세손에 의해 발탁되어 예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정조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되어 수어사(守禦使)와 총융사(摠戎使)를 겸임하여 군사권까지 장악하였고, 우참찬·판돈령부사를 거쳐 1777년(정조 1) 우의정, 1778년(정조 2) 좌의정, 1779년(정종 3)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780년(정조 4) 일시 한직에 물러났다가 곧 다시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1783년(정조 7) 판중추부사가 되었고, 1791년(정조 15) 영중추부사로 재직하다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