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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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繼孫 |
영어음역 | Yi Gyeson |
이칭/별칭 | 인지(引之),경헌(敬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전기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인지(引之), 호는 경헌(敬憲). 이진(李珍)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유(李猷)이다. 아버지는 이의인(李依仁)이며, 어머니는 송구윤(宋九贇)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계손은 1447년(세종 29)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정언, 1455년(세조 1) 병조좌랑, 1457년(세조 3) 예조정랑을 거쳐 1459년(세조 5)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함길도에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어 여러 장수들을 위문하였다. 1461년(세조 7) 북방의 여진족에 대비하기 위하여 한명회(韓明澮)가 순찰사로 임명되었으며, 당시 이계손은 순찰사의 종사관에 추천되었다. 그러나 병을 이유로 꺼리자 웅천진(熊川鎭) 군졸로 복무하는 형벌을 받았다가 곧 사면되었다.
1464년(세조 10)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가 기근에 시달리는 도민을 적절히 진휼하여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466년(세조 12) 형조참판과 예조참판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함경도관찰사로 나아가 이시애(李施愛)의 난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했다. 1470년(성종 1)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향교를 적극 후원해 이 지방의 학문을 진작하는 업적을 쌓았다. 1474년(성조 5) 형조판서로 재임하던 중 주문사(奏聞使) 김소(金銷)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대사헌·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경기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혼인과 빈객 접대에 필요한 어육을 황해도관찰사 이봉(李封)에게 요구한 사실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고, 아산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사면되었으며 한성부윤과 병조판서를 거쳐 1483년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