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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28
한자 趙最壽
영어음역 Jo Choesu
이칭/별칭 계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70년연표보기
몰년 1739년연표보기
본관 풍양
대표관직 강원감사

[정의]

조선 후기 울릉도 수토를 정지해 줄 것을 조정에 요청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계량(季良).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고 아버지는 조상개(趙相槪), 어머니는 오상한(吳詳漢)의 딸이다.

[활동사항]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즉위한 뒤 응교(應敎)·사간(司諫)·교리(校理)를 지내면서 불합리한 조정 대신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727년(영조 3) 동부승지(同副承旨)·승지(承旨)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이때 북상(北商)에 의해 자행되는 은의 유출로 인한 국가 체면 손상을 우려하였다.

이어 1730년에는 대사헌·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대사간을 거쳤다. 이듬 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서 정사(正使) 이의현(李宜顯)·서장관(書狀官)·이구휴(李龜休) 등과 함께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732년에는 강원감사(江原監司)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대관령 이서 지역 민역(民役)의 절반을 전포(錢布)로 할 것, 역졸의 삼수량(三手粮)을 병행하지 말 것, 오랜 동안 흠결로 남아 있는 고성(高城)·홍천(洪川)의 진휼곡을 탕감해 줄 것 등을 주장하였다. 1734년에도 강원감사로 재직하면서 백성의 고충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1735년(영조 11)에는 강원도의 흉년을 이유로 그 해 울릉도 수토를 정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일본인들이 울릉도를 달라고 했을 때 조정에서 엄하게 배척하고 장한상(張漢相)을 보내어 그 섬의 모양을 그려서 왔으며, 3년에 한 번씩 가보기로 정하였으니 이를 정지할 수 없다’는 김취로(金取魯)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울릉도 수토를 강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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