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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43
한자 許珙
영어음역 Heo Gong
이칭/별칭 의,온궤,문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233년연표보기
몰년 1291년연표보기
본관 공암
대표관직 지첨의부사|동지추밀원사

[정의]

고려 후기 울릉도 작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공암(孔巖). 초명은 의(儀). 자는 온궤(韞匱). 아버지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허수(許遂)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1258년(고종 45)에 평장사(平章事) 최자(崔滋)의 문하에서 병과로 급제, 승선(承宣) 유경(柳敬)의 추천으로 최령(崔寧)·원공식(元公植)과 함께 내시(內侍)로 추천되어 정사점필원(政事點筆員)이 되자,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정방3걸(政房三傑)이라 불렀다. 이후 국학박사(國學博士)에 보임되었고 원종 초에는 각문지후(閣門祗候)에 제수되었다.

1267년(원종 8) 호부시랑(戶部侍郎)으로서 신종·희종·강종의 실록(實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 1275년(원종 14년) 울릉도 작목사로 임명되어 원나라에 파견되어 이추와 함께 울릉도에 들어가도록 임명되었다. 이에 원 황제에게 울릉도에서의 벌목 중지 등 여러 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1279년(충렬왕 5)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로 있을 때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위해 전함의 건조를 명하자 경상도 도지휘사가 되어 이를 담당하였다. 1281년(충렬왕 7)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밀직사사(密直司使)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익방(李益邦) 등 33인의 진사를 취하였다. 이어 세자조호(世子調護)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제수받았다. 이듬해 참문학세자보(參文學世子保)가 되었고, 1284년(충렬왕 10) 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원부(元傅)·한강(韓康) 등과 더불어 『고금록(古今錄)』을 편찬했으며, 이어 첨의중찬(僉議中贊)에 임명되었다.

1290년(충렬왕 16)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합단(哈丹)[원의 반란군]이 침입했는데, 이때 홍자번과 함께 서울을 수비하였다. 당시 적이 이미 가까이 들어왔다는 유언비어가 돌아 민심이 흉흉했고 조신들도 모두 강화로 피난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홀로 “어찌 유언비어를 믿고 마음대로 국도(國都)를 옮기리오!” 하며 반대하였다. 이듬해 원나라가 이를 토벌하려고 군사를 보내왔을 때 군사를 이끌고 이에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310년 충렬왕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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