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649
한자 黃喜
영어음역 Hwang Hui
이칭/별칭 수로,구부,방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개성 가조리
성별
생년 1363년연표보기
몰년 1452년연표보기
본관 장수
대표관직 영의정

[정의]

조선 전기 울릉도 해금정책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신.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황희는 울릉도·독도 지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살았고 본토와 활발한 왕래를 하고 있던 울릉도·독도 지역을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곳으로 바꾸는 해금정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1417년(태종 17) 2월 안무사(按撫使) 김인우는 울릉도의 토산물인 큰 대나무와 물소[강치] 가죽 등을 가지고 거주민 3명을 데리고 울릉도에서 돌아왔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섬에는 15가구에 86명이 살고 있었다. 태종은 곧 우산·무릉도 즉 울릉도 주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우의정 한상경(韓尙敬)과 육조(六曹) 및 대간(臺諫)이 주민들을 그대로 살게 하자고 하였고 공조판서 황희만이 주민들을 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한상경 등은 울릉도의 주민들에게 오곡(五穀)과 농기(農器)를 주어 생업을 안정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보살피는 한편 세금을 정하여 토산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황희는 주민들을 안정시켜 거주를 금지시키고 빨리 본토로 데리고 나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태종황희의 의견을 채택하였다.

태종은 “우산·무릉 등지의 주민들은 일찍이 국가에서 부과하는 요역(徭役)을 피하여 편안히 살아왔는데 지금 관리를 파견하고 세금을 거둔다면 그들이 반드시 싫어할 것이니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다”라 하고, ‘주민들을 육지로 나오게 하는 것’[住民刷出]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태종은 김인우를 그대로 안무사로 삼아 거주민들을 모두 거느리고 나오도록 다시 우산·무릉 지역[울릉도·독도 지역]으로 보냈다. 강원도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에게 명하여 병선 2척을 주게 하고 강원도 내의 수군 만호(萬戶)와 천호(千戶) 중에서 유능한 자를 가려 김인우와 함께 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울릉도와 독도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막는 해금정책(海禁政策)이 확정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