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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870
한자 天主敎
영어의미역 Catholic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봉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변천]

경상북도 울릉군의 천주교는 1882년 개척령과 함께 천주교 신도 박근실이 입도하였다는 이야기는 전해지나 천주교 전파를 위한 활동 상황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1956년 현제룡(玄濟龍)[비오]이 서정길 대주교에게 울릉도 전교를 자원하여 동교 김상윤(金相潤)[요한], 이진옥(李珍玉)[돈보스꼬]과 함께 입도하여 한진오, 최홍, 손태수, 박일동 등 울릉청년회와 힘을 합쳐 울릉중앙천주교회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1956년 전교를 위해서 울릉도에 입도하였지만 현지인들의 생활이 너무나 열악하여 현제룡 일행은 국제가톨릭복지협의회에 도움을 청해 다량의 옥수수, 소맥분, 의류 등을 들여와 무료로 나누어 주면서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이를 기반으로 1956년 5월 현제룡의 추천을 받은 현상현(玄尙鉉)[로꼬]이 서정길 주교의 명을 받아 울릉도전교총회장이 되고, 7월에 천부리·나리·석포리 등에 공소를 설치하였다.

1956년 7월 28일 대구가톨릭대학교 학장인 전석재(全碩在) 신부가 입도하여 천부초등학교 교정에서 첫 미사를 보았으며 600여 명의 신도가 참석하였다. 이후 1957년에 남양리·사동리·태하리·평리에 공소가 신설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2일 신상도, 김규태 신부가 입도하여 10일 동안 영세식을 거행하여 주민 1,403명에게 영세하였다.

1958년 5월 17일 도동의 임시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노천집회를 통해 계속적으로 미사를 진행하였다. 자유당 말기 천주교가 야당성이 농후하다고 하여 천주교를 억압하였으며, 이때 김요한이 민주당원이라는 명목으로 섬에서 출도를 당하였다. 1960년까지 울릉도 전역에 12개의 공소가 있었지만, 현재는 2개의 성당이 남아 있다.

[현황]

2007년 현재 경상북도 울릉군에는 울릉읍 도동1리에 있는 도동천주교회, 북면 천부리에 있는 천부천주교회가 있다.

1. 도동천주교회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소속 성당이다. 1960년 3월 27일 초대 주임으로 이길준 신부가 임명되어 왔다. 1963년 8월 11일 오스트리아부녀회로부터 기증 받은 성당 건립 기금으로 도동성당이 착공되었다. 이후 1964년 예수성심시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

1977년 12월 처음으로 울릉도 출신의 사제인 정춘석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탄생하였다. 1985년 도동수녀원이 지어졌고 1990년에는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관할 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저동리, 남서리 전 지역을 관할한다. 신도 수는 약 400여 명이며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2. 천부천주교회

주보성인은 사도 성 바오로이며 1965년 6월 천부성당이 착공되었다. 1966년 초대 주임으로 유승렬 신부가 부임하여 분가되었으나 1975년 다시 도동본당으로 소속되었다. 1991년 최환욱[베다]신부 부임으로 천부 성당이 본당으로 재설정되어 분가되었다. 신자 수는 150여 명이며 주임 신부는 최광득[토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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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현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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