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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하면 벌 받던 어린 시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A03060002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고경래

“집에서 어리광이나 부리며 밥투정이나 하면서 지내야 할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이란 우리나라 말이다. 형님 덕분에 학용품 이름 몇 개 정도는 근근히 일본어로 할 수 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 면접시험에는 합격이 되어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가까운 이웃에서 입학한 친구는 용수, 복수, 정덕, 여자 친구 남순이와 다섯 사람이었다.

망아지처럼 온 들판을 뛰어 놀다가 갑작스럽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또 선생님께서는 모든 말씀을 일본어로만 하시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오직 시간이 빨리 지나가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입학 첫날은 학교 주위며 화장실 사용법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이틀째 되던 날은 지겨운 네 시간 동안의 학과여서, 마치고 책보를 싸서 집으로 가라기에 날아갈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선생님께 꾸벅 절을 하고 "용수야, 빨리 집에 가자" 하고 큰소리로 불렀더니, 선생님께서는 조선말을 하였다고 나를 불러 세우고는 아직 부모님에게 한 번도 맞아 보지 않았던 뺨을 두 번이나 사정없이 때리고는 한 시간 동안 꿇어 앉혀 벌을 주었다.

철을 들어 생각하니 바로 이것이 나라 없는 설움이며 정치인들의 호의호식에서 일어난 피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1988년 동남아 연수를 가게 되어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행들 중에서는 일본 제품이 좋다고 하면서 가전제품과 화장품을 많이 구입하였다. 그러나 나는 십 원짜리 물건도 하나 사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일본말이 아니면 말을 못하게 하여 벙어리로 만들어 친구간의 대화도 손짓, 발짓으로 하게 만든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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