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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령 이전에 울릉도에 들어온 이진화, 그 5대손 이춘태 증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C03010002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천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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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천부를 5대째 지켜오고 있는 이춘태씨

“고조부(이진화)께서 1821년에 경주 입실에서 태어나셨답니다. 그 분이 회갑 때 아들 용언을 데리고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1881년경에 울릉도에 들어왔을 겁니다. 저희 고조부께서 회갑 때 울릉도에 들어오셨다고 누차 들었으니 분명 1883년 이전에 들어온 것만은 분명합니다. 흔히들 울릉도 개척을 말할 때 1883년 16호 54명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고 개척사를 말합니다. 울릉도개척령이 내린 후 울릉도 개척을 주관하기 위한 ‘도장’에 이규원이 만났던 ‘전석규’란 사람을 임명했는데, 이 사람은 함양인으로서, 생원이며, 개척령이 내리기 10여년 전에 입도한 사람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울릉도 개척사를 16호 54명에 초점을 두고 말하는 것은 울릉도 개척사를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사민의 경우 ‘부실자(富實者)’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16호 54명은 결코 부실자(富實者)라고 볼 수 없습니다. 16호 가운데 1명에 불과한 호가 7호나 되며, 2인인 경우도 2호나 됩니다. 도리어 ‘부실자(不實者)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갖고 울릉도 개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죠.”

1882년,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이 만난 조선인 141명 가운데 이진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규장각에 보관된 문서에 1883년 울릉도에 들어온 신입호구 16호 54명의 명단에도 이진화는 찾을 수 없다. 이 분들이 빈 섬인 울릉도에 처음 입도한 개척민들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춘태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진화는 개척령 이전에 이미 울릉도에 들어와 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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