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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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景濬 |
영어음역 | Sin Gyeongjun |
이칭/별칭 | 순민,여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상규 |
[정의]
조선 후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여암(旅庵), 자는 순민(舜民). 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인 신말주(申末舟)의 10대손 진사 신내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한의홍(韓儀鴻)의 딸이다. 33세 때까지 여러 곳으로 옮겨 살다가 33~43세까지 고향에 묻혀 살면서 저술에 힘썼다.
[활동사항]
신경준이 관직에 나아간 것은 43세 때인 1754년(영조 30)에 실시된 증광향시에 급제하면서부터이다. 늦은 나이로 관계에 진출한 그는 승문원기주관(承文院記注官)·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서산군수·장연현감·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거쳤으나 관직생활은 그리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15년 만인 1769년(영조 45)에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이 해에 영의정 홍봉한이 울릉도의 영유권에 관한 외교관계의 문건으로 삼을 수 있는 책을 편찬할 것을 청하였다. 이 때 홍봉한의 천거로 비변사낭청(備邊司郎廳)으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강역고(疆域考)』와 『만기요람(萬機要覽)』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저술 및 작품]
영조는 신경준이 편찬한 『강역지(疆域誌)』를 보고 그에게 『여지편람(輿地便覽)』을 감수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여지편람』을 본 영조는 그 범례가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와 비슷하다 하여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로 이름을 바꾸어 새로 편찬하게 하였다. 그밖에 『산수고(山水考)』·『강계고(疆界考)』·『사연고(四沿考)』·『도로고(道路考)』·『군현지제(郡縣之制)』·『가람고(伽藍考)』 등 지리학과 관련된 대작(大作)을 많이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