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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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尙敬 |
영어음역 | Han Sanggyeong |
이칭/별칭 | 숙경,경중,신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상규 |
[정의]
조선 전기 울릉도 쇄출(刷出) 정책에 반대한 문신.
[개설]
안무사(按撫使) 김인우가 울릉도로부터 1417년 2월 5일 귀환하여 복명하자, 태종은 우의정 한상경에게 명하여 육조의 대신들과 대간들을 소집해서 어전회의를 열어 울릉도 거주민의 육지 이주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이 어전회의에서는 육지 이주에 반대하는 다수의 의견과 속히 이주시키자는 공조판서 황희의 주장이 엇갈렸는데 태종은 육지 이주정책이 옳다고 하면서 이를 채택하게 된다.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숙경(叔敬)·경중(敬仲), 호는 신재(信齋), 시호는 문간(文簡). 할아버지는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이고 아버지는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한수(韓脩)이며 어머니는 길창군(吉昌君) 권적(權適)의 딸이다.
[활동사항]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우정언·전리정랑(典理正郎)·예문응교·공부총랑(工部摠郎)·종부영(宗簿令)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密直司右副代言)에 승진하였다. 이 해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는 모의에 가담하고, 보새(寶璽)를 받들어 이성계에게 바쳤으며, 그 공으로 개국공신 3등에 추록되었다.
개국 후 중추원도승지(中樞院都丞旨)가 되고,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도평의사사사(都評議使司使)에 승진되었으며, 충청도도관찰사가 되어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다시 경기좌도도관찰사에 보직되었다가 태종 때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이조판서를 거쳐,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우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1417년(태종 17) 태종이 우산(于山)·무릉도(武陵島)의 주민을 본토로 옮길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를 의논하게 하였을 때 주민을 불러내지 말고 오곡(五穀)과 농기(農器)를 주어 생업을 안정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보호하는 동시에 세금을 거두자고 하였다. 이 의논에서 공조판서 황희(黃喜)만이 홀로 주민을 이주시킬 것을 주장했는데, 태종은 황희의 의견을 옳게 여겨 결국 울릉도에 주민의 거주를 금지시키는 해금정책(海禁政策)[울릉도 쇄출정책]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