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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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屋 |
영어의미역 | House of Yi Jongha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 421[남양3길 186]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찬영 |
성격 | 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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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화통집|투막집 |
건립시기/일시 | 1910년경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 421[남양3길 186] |
소유자 | 이종해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가옥.
[위치]
해변 마을이자 서면사무소가 있는 남양1리 골계 연변에서 동북쪽의 남양천을 따라 1.3㎞ 떨어진 지점의 북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가면,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600m 가량 올라가면 해발 200~250m의 고지대 산비탈에 10여 호로 이루어진 산촌(散村)인 서당마을이 있다. 이종해 가옥은 이 마을 북동쪽에 있는 마을 주차장 동쪽 20m 지점의 산비탈에 독가(獨家)로 있다.
[변천]
울릉도 개척 당시에는 정지, 큰방 각 1칸의 투막집이었으나 후대에 온돌방 2칸을 세로 방향으로 확장했다.
[형태]
이종해 가옥의 집터는 험한 산비탈에, 바다가 잘 바라다보이는 동남쪽에 석축을 쌓아 닦았다. 여기에 정면 5칸, 측면 1칸의 본채 1동을 일자형으로 배열했다. 평면 및 구조는 다소 복잡하다. 평면은 왼쪽부터 정지 2칸에 온돌방 3칸이 연접 배열되어 있다.
이종해 가옥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평면과 구조의 차이이다. 구조의 경우, 정지 동쪽 온돌방은 통나무 벽의 투막 구조이나 나머지 2칸 방은 흙벽의 화통 구조이다. 또한 동쪽 끝의 방이 정지 동쪽 두 번째 방에서 일정한 거리로 벌어져 방 1칸을 별도로 증설한 것 또한 특징이다. 이때 주축도 동남쪽으로 10° 더 틀어지고, 앞 벽은 50㎝ 가량 더 튀어나왔다.
이종해 가옥의 건립 연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거주자 말로는 개척 당시에 정지 1칸, 방 1칸의 투막집이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오른쪽으로 온돌방 2칸을 차례로 증설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온돌방 3칸 중 후대에 증설한 2칸 방은 벽체 재료 및 구조, 규모, 축향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투막집의 구조는 축담 위에 놓은 큼직한 자연석에 직경 15~21㎝ 정도의 통나무 8개를 정(井)자 틀로 짜고 틈새는 진흙으로 빈틈없이 메웠다. 벽 높이는 대략 1.9m 정도이다. 특히 방 벽 양단 최상단의 벽체 통나무는 처마 쪽으로 1m 가량 돌출시켜 서까래를 받치는 처마도리를 받도록 가구했다.
이런 구조 방식은 현재 나리분지에서 각종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투막집과 너와집에서는 볼 수 없다. 다만 개척 당시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신원수 가옥에서 동일 구조가 엿보인다. 정지 앞으로 돌출된 공간에는 두지를 두었고, 동쪽 끝의 방 앞으로는 마구간 흔적이 남아 있다. 방 천장은 모두 고미반자이다. 현재 빈집으로 방치한 지 오래되어 방 벽이 무너지는 등 훼손이 심하다.
[의의와 평가]
울릉도 개척 당시의 가옥 규모와 형태,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 주생활 문화의 변화에 따른 주거 행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추후 체계적인 관리 및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