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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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된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역에 관한 이야기. 춘포역(春蒲驛)은 일제강점기부터 줄곧 ‘대장역’으로 불리다가 1996년 ‘춘포역’으로 개칭되었다.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소규모 철도 역사(驛舍)이지만,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1월 11일 익산 춘포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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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정치인. 강세형은 1899년(고종 36) 6월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 조치대학교[上智大學校]와 독일 베를린대학교[伯林大學] 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강세형(姜世馨)[1899~1960]은 1899년 6월 2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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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인성(姜仁聲)[1897~1930]은 1897년 1월 13일 익산군 웅포면 상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이튿날인 3월 6일에 군산 서래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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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한국에 개신교(改新敎)가 전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이다. 1879년에 백홍준, 이응찬 등 4명이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1878년에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이 한글로 번역되었으며, 1884년에 서상륜 형제가 황해도에 송천교회를 설립하였다. 전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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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와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에 분포하는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 ‘고고학의 보고, 지붕 없는 박물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익산시와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에 있는 백제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지 8곳을 가리킨다. 그중 익산시는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과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등이 해당된다. 세계유산[Wo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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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뿌리채소인 고구마는 전라북도 익산시 일대에서 생산되고 있다. 익산시의 고구마 브랜드로 ‘탑마루 고구마’가 있다. 탑마루 고구마는 모양이 예쁘고 당도가 높으며 섬유질과 비타민, 칼륨과 칼슘이 풍부하여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많다. 고구마 원산지는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북북 지역이며,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온 시기는 조선 시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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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고종의 초상화. 고종황제 어진(高宗皇帝御眞)은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익선관과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어좌(御座)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고종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나 기법으로 보아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제작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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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총권(高寵權)[1867~1959]은 1867년 11월 26일 익산군 황화면 마전리[현 충청남도 논산시 황하면 마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에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과 정대원(丁大元) 등 여러 천도교인들과 함께 여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논의하여 망성면과 금마면 등의 연락 책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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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갈산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관음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일본인들에 의하여 일본 정토진종의 사찰인 동본원사(東本願寺)라는 명칭으로 창건되었다. 1960년대 초까지 원불교 이리교당으로 사용되다가 정복연화 보살이 절터를 구입하여 금산사에 기부하였고,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금산사의 말사로 등록되었다. 1998년 일본식 사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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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어양동 익산 제1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전자 회사. 1972년 일본 교토에서 시작하였으며, 1980년 한국 익산, 1992년 중국에 거점을 갖춘 글로벌 전자부품 회사이다. 오랜 기술 노하우를 기반으로 광센서, 반도체 디바이스, LED의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화합물 반도체 칩(Chip) 제조 기술과 실리콘 반도체 칩 제조 기술을 보유하여, 칩에서부터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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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지형과 지물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 2019년 기준으로 익산시에 설치된 교량의 수는 육교 10개, 지하보도 1개, 지하차도 5개를 제외하면 총 151개이다. 그중 익산을 분기하는 고속국도에 설치된 교량은 9개인데 삼례육교와 온수육교를 포함하게 된다면, 총 11개이다. 고속국도에 설치된 교량은 한국도로공사에서 관리한다. 국도에 설치된 교량은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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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시에서부터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해전리를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이르는 일반국도. 국도1호선은 전라남도 목포시를 기점으로 전라북도 익산시를 통과하고 충청남도 천안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을 지나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종점으로 하는 일반국도이다. 국도1호선은 목포~신의주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63년 일본이 건설한 신작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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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시에서부터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해전리를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이르는 일반국도. 국도1호선은 전라남도 목포시를 기점으로 전라북도 익산시를 통과하고 충청남도 천안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을 지나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종점으로 하는 일반국도이다. 국도1호선은 목포~신의주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63년 일본이 건설한 신작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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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도가니와 유리가공품. 국립익산박물관 소장(國立益山博物館所藏) 도가니[土製坩堝]와 유리가공품(琉璃加工品)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익산 미륵사지와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도가니와 유리 가공품이다. 도가니는 유리나 금속 원료를 담고 가열하여 녹일 때 쓰는 두꺼운 토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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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를 상징하는 시화. 전라북도 익산시는 청초한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국화를 시의 무궁한 발전과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하는 의미로 1995년 시화로 지정하였다. 익산시에서는 2004년부터 매년 10월 말~11월 초에 익산천만송이국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국화 줄기의 높이는 보통 1m 정도이며, 줄기 밑은 목질화되어 있다. 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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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저수지. 금마저수지는 1940년에 착공하여 1941년 준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익산 지역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농업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금마저수지는 1940년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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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저수지. 금마저수지는 1940년에 착공하여 1941년 준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익산 지역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농업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금마저수지는 1940년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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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도로를 통해 연결된 사통팔달 육로 교통의 중심지 익산. 익산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교통의 요지이다. 도시 인구 수와 면적 등 규모의 외연을 고려할 때 익산만큼 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된 도시는 드물다. 철도와 도로가 사통팔달로 이어져 교통 여건에서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호남평야에 안겨 있는 듯한 형세의 익산은 원래 ‘솜리’라는 이름으로 남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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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덕(金光德)[1885~1945]은 1885년 1월 14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송종석(宋宗錫)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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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김근배(金根培)[1847~191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이다. 아버지는 김현교(金顯敎)이고, 아들은 김종호(金鍾昊)이다.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지금의 익산시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옥승(曺玉承)에게서도 시문을 배웠다.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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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수(金炳洙)[1898~1951]는 1898년 10월 18일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병수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의 권유로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가지고 1919년 2월 25일 군산으로 내려갔다. 이튿날인 2월 26일 영명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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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호(金秉鎬)[1865~?]는 1865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으로 이주해 낭산면 호암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병호는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정대원(丁大元)·이유상(李有祥)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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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봉우(金鳳友)는 1882년 지금의 익산시 목천동 목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봉우는 익산군 관동(冠洞)에 살던 이창오(李昌五) 집을 비롯한 익산 일대의 여러 촌락에서 총기를 징발하는 등 군수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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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시복(金時福)[1885~?]은 1885년 전라북도 익산군 남일면 용자포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서 1909년까지 2년 동안 전국적으로 펼쳐진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전투가 치열하였다.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전에는 한일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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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덕(金龍德)[1926~1995]은 1926년 4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3월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고 전통 역사관 및 독립사상 확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등독서회는 김용덕을 비롯하여 홍환균·최규학·옥대호·노동훈·안동영·이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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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성(金龍成)[1911~1943]은 1911년 8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김제 백구면에 있는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普通學校)[현 부용초등학교] 재학 중 안영묵(安榮黙)의 영향으로 강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부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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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교육자. 김원룡(金元龍)[1909~195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아버지는 유헌(悠軒) 김종원(金鐘遠)이다. 김원룡은 1909년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서 태어났다. 1916년 여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2년 전주공립농업학교 중퇴 후 1923년 전주도립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26년 김제 월촌공립보통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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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옥(金致玉)[1879~1927]은 1879년 10월 14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무단통치하에 감시가 엄중한 상황이던 1918년에 목사인 배은희(裵恩希)와 함께 종교인과 일반인을 규합하여 지하 독립운동 조직에 착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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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규(金漢奎)[1900~1961]는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경 김한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金振聲)을 중심으로 고정식, 이순명, 김교우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한규 등은 1920년 8월 14일 군산에서 완구용 육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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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곤(金華坤)[1899~1944]은 1899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세이소쿠영어학교]에 유학 중 일본인들에 의한 동포들의 차별과 수모를 직접 경험한 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을 결심하고 1926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귀국한 김화곤은 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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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흥여(金興汝)[1889~?]는 목화상을 하다가 일제의 침탈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정판성(鄭判成)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김흥여는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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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만든 돌, 전라북도 익산에서 생산되는 황등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익산 황등에서 나는 화강암을 ‘익산 황등석’이라고 한다. 익산 황등석은 황등과 낭산을 중심으로 함열, 삼기, 여산, 금마를 아우른 지역에서 주로 채취된다. 예로부터 익산의 화강암은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왔다. 조선 철종 9년(1858)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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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에 있는 저수지. 낭산저수지는 일제 강점기인 1945년 2월에 착공하여 광복 후 1947년 1월에 준공되었다. 일명 미륵저수지라고도 불린다. 낭산저수지는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일대 농민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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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환(盧桓)[1916~1994]은 1916년 12월 13일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 교사로 재직 당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다가올 조국 독립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다가 1942년 10월 31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43년 9월 20일 일제는 유치장에 있는 노환에게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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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용동면 구산리에 속하는 마을. 농소마을의 옛 명칭은 ‘농막’이었다. 농소마을은 들 가운데 위치하였는데, 농사철에만 이용하였던 농소(農所)[농막(農幕)]가 많아 ‘농소마을’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는 금강과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덧붙여 농소마을을 문 안쪽에 마을이 있다는 뜻의 ‘문안’, 그리고 농수를 사투리로 발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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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용동면 구산리에 속하는 마을. 농소마을의 옛 명칭은 ‘농막’이었다. 농소마을은 들 가운데 위치하였는데, 농사철에만 이용하였던 농소(農所)[농막(農幕)]가 많아 ‘농소마을’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는 금강과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덧붙여 농소마을을 문 안쪽에 마을이 있다는 뜻의 ‘문안’, 그리고 농수를 사투리로 발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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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농산물의 재배와 품질 관리 활동. 전라북도 서북단에 자리 잡은 전라북도 익산시는 자연지리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남서부에 있다. 한반도, 특히 남한의 서쪽은 평야지대가 많은데, 익산시는 그중에서도 거의 중앙부에 있다. 함라산 줄기가 서북부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져 구릉과 크고 작은 하천이 비옥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는 금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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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감로도. 대곡사명 감로왕도(大谷寺銘甘露王圖)는 1764년(영조 40)[건륭 29] 제작된 감로도로 치상(雉翔)·쾌인(快仁)·수오(守悟)·도균(道均)·쾌일(快日)·담혜(曇慧)·홍안(弘眼)·광헌(廣軒)·성찬(性贊)·낙보(樂宝)·낙선(樂禪)·보학(宝學)·능찬(能贊) 등 총 13명의 화승이 조성하여 경상북도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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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마동에 있는 대한천리교의 분원. 천리교는 1838년에 일본 야마토(大和) 지방[현 나라현]의 나카아먀 미키[中山美伎][1798~1887]가 창시한 신종교이다. 세계와 인간 만물을 창조한 어버이신 천리왕명(天理王命)을 유일신으로 믿는다. 1893년에 사토미 한지로우[里見治太郞]가 부산에서 처음으로 한국 포교를 시작하였다. 천리교가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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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는 차가 다니는 큰길. 전라북도 익산시는 호남고속도로가 동부를 지나고 국도1호선, 국도23호선 등 10여 개의 주요 국도와 주요 지방도로가 전국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1980년부터 금마에 고속도로 IC가 생기면서 전라도 내 3개의 시와 직결되어, 국도, 고속도로, 지방도로, 철도가 사통팔달로 연결된 호남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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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신흥동에 있는 첨단 화학 물질 생산 회사. 일본 스미토모화학이 익산시에 투자한 회사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및 에너지 관련 업체에 최첨단의 재료[소재]를 개발하여 공급하는 기술집약적 기업이다. 1991년 12월 동우반도체약품을 설립하였다. 1992년 10월 익산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99년 8월에는 동우화인켐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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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비롯한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동학교도들은 동학 금지령을 빙자한 지방관들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전개하였다. 동학교도들의 신원운동은 마침 익산 등 전라도 일대에서 일어난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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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이리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장터에는 미리 약속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주동자는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 문용기(文鏞祺)[1878~1919]였다. 영명학교가 있던 군산에서 고향인 익산으로 건너온 문용기는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몰래 만났고 3월 26일의 이리 만세 시위에 이어 4월 4일에 다시 시위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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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은 익산시의 북동쪽 끝에 위치하여 있으며, 서쪽으로 익산시 용동면과 낭산면, 남동쪽으로 익산시 여산면, 동쪽에 강경천을 경계로 논산시, 북쪽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금강 너머 부여군이 있다. 면 소재지인 신작리를 포함하여 화산리·장선리·어량리·내촌리 등 6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1905년 이후 의병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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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매곡마을에 있었던 일제 강점기 사당. 매곡사(梅谷祠)는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자결한 매하(梅下) 김근배(金根培)의 절의와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제자들과 아들 김종호가 1931년 세운 사당이다. 이후 1974년 3월 항일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 의사와 백정기(白正基) 의사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 제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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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항기 문인 김근배의 시문집. 『매하유고(梅下遺稿)』는 1910년 국권피탈에 항거하여 자결한 매하(梅下) 김근배(金根培)[1847~1910]가 쓴 글을 5권 2책으로 묶어 1947년에 간행한 책이다. 김근배의 시와 글, 사상과 행적,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경상북도 경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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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용기(文鏞祺)[1878~1919]의 호는 관제이며, 아버지는 문윤재이다. 문용기는 1878년 5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관음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군산의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하였고, 1907년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왓킨스학교에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하였다. 1911년 왓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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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용기(文鏞祺)[1878~1919]의 호는 관제이며, 아버지는 문윤재이다. 문용기는 1878년 5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관음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군산의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하였고, 1907년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왓킨스학교에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하였다. 1911년 왓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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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예술 활동. 전라북도 익산은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 도시로서 문화예술 영역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문화도시이다. 7세기경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 아스카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곳이 익산이라는 학설도 보인다. 불교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의 문화유산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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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관옥(朴寬玉)[1880~?]은 1880년 전라북도 익산군 우북면[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김경섭(金景燮)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5월 11일 밤 박관옥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익산군 우산면 동하리 이장인 강성옥(姜成玉)의 집에 뛰어들었다. 박관옥 등은 백성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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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의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박길진(朴吉眞)[1915~1986]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법명은 광전(光田), 법호는 숭산(崇山)이다. 할아버지는 박성삼(朴成三)이고, 아버지는 원불교 교조(敎祖)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다. 박길진은 1915년 8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배재고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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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박병렬(朴柄烈)[1881~1940]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던 박영호이다. 미국인 선교사 맥커친(L. O. McCutchen)[한국명 마로덕(馬路德)]의 지도로 설립한 삼기면 서두리의 서두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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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복순(朴福淳)[1888~?]은 전라북도 익산군 두남면 장정리 출신으로 도기를 제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삼남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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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사국(朴士國)[1888~1934]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박기상(朴岐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박사국은 1888년 9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이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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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문(朴水文)[1897~1937]은 1897년 7월 7일 지금의 익산시 용동면 화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유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서정만(徐廷萬)·장경춘(張京春) 등의 주도로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열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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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영오(朴永五)[1874~?]는 1874년 전라북도 익산군 서일면 관암리에서 태어났다.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부장(部將)으로서 익산과 김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2월 24일 김시백 등 동료 4명과 함께 고산군[현재의 완주군 일대] 서면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고, 4월 7일에도 김제군 공동면[현 김제시 백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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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진(朴永鎭)[1882~1928]은 185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이었던 박영진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익산교구의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을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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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익산군수를 지낸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영철(朴榮喆)[1879~1939]의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호는 다산(多山)이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박기순(朴基順)이다. 박영철은 1879년(고종 16) 2월 2일에 태어났다. 1901년 일본 동경에 있는 성성의숙(成城學校)을 졸업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03년에 일본 육사 15기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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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원불교를 창시하고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중앙총부를 건립한 종교인.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처화(處化), 호는 소태산(少太山)이다. 원불교 존호는 대종사(大宗師)·원각성존(圓覺聖尊)이다. 아버지 박성삼(朴成三)과 어머니 유정천(劉定天) 사이의 4남매 중 셋째이다. 부인은 양하운(梁夏雲)이다.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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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배헌(裵憲)은 1896년 4월 27일 지금의 익산시 주현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여 1917년부터 1919년까지 학우회 제3대 토론부장으로 활동하며 혁명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신흥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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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의 남성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 백남규(白南奎)[1891~1956]은 189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일석(一石)이다. 호남의 대유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6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1919년에 동경수학전수학교(東京數學專修學校)를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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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백남혁(白南赫)[1907~1982]은 1951년 이리농과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목인(牧人)이다. 백남혁은 1907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서 태어났다. 1927년 고창고등보통학교(高敞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2년 동경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을 졸업하였다.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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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배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사당. 백산원(栢山院)은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 배산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의 맞배지붕 형식 사당이다. 1915년 만포(晩圃) 정제호(鄭濟鎬)와 모은(慕隱) 정동식(鄭東植)[1850~1910]의 후손들이 일제에 항거한 선조들의 충절을 사묘하기 위하여 세웠다. 익산의 연일정씨 가묘로 출발하였으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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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규섭(邊圭燮)[1911~1945]은 1911년 3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전주고보(全州高普)를 퇴학한 이석용(李碩鎔)을 만나 조국의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청년 및 노동자 등 민중의 단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제작해서 7월 17일 금마면 장터에 게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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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년 고구려 유민들이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세운 나라. 전라북도 익산 지역은 고조선의 왕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한왕(韓王)’을 칭하고 도읍하였고, 마한의 중심 세력인 목지국(目支國)이 있었다고 비정되는 곳이다, 또한 백제 시대에는 무왕이 백제 왕궁을 조성하였기도 하였다. 백제 멸망 이후로는 고구려 유민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安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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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소순이 쓴 연행 일기. 『보진당연행일기(葆眞堂燕行日記)』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출신인 소순(蘇巡)[1499~?]의 연행 일기이다. 소순이 1533년 12월 명나라 세종(世宗)의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소세양(蘇世讓)이 연경[북경의 옛 이름]에 진하사(進賀使)로 파견되었는데, 이 때 소순은 자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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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의 문집. 『북산산고(北山散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가 남긴 문집이다. 임규는 1895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수학하였으며,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이후 최남선과 함께 귀국하여 국학 관계 서적을 간행하고 많은 민족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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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익산은 공주 및 부여와 더불어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백제 말에 불교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 있다. 익산에는 총 23개의 국가 지정 문화재가 있는데, 그중에서 14개가 불교 관련 문화재이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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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서식하는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 비단벌레는 우리나라 비단벌레과 곤충 중에서 가장 크며, 몸길이는 3~4㎝ 정도이다. 몸은 초록빛과 금빛이 돌며, 광택이 화려하다. 앞가슴등판과 딱지날개에 선명한 붉은색 세로 줄무늬가 두 줄로 나 있다. 몸의 배쪽은 금빛이 도는 초록색이며, 가슴과 배의 중앙은 금빛이 도는 붉은색을 띤다. 머리는 오각형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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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사명당에 관련한 이야기. 「사명당의 활약」은 일본으로 간 조선 전기의 승려 사명당(四溟堂)[유정(惟政), 1544~1610]이 기이한 도술과 신묘한 지력으로 일본인의 계략을 무사히 넘기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이야기이다. 1604년 사명당이 실제 일본으로 건너가 3,000명의 포로를 구하여 돌아왔다. 「사명당의 활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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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출신의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에 관한 이야기.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1891~1968]는 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조 부흥 운동에 앞장섰고 시조뿐만 아니라 국문학·서지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술과 제자, 난초를 사랑한 삼복지인(三福之人)의 훈훈한 인간미 또한 이병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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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 당시 익산에서는 천도교 조직을 활용하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기독교계와도 연계하여 천도교와 기독교 두 종교계가 함께 하였다. 특히 1919년 4월 4일 시위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시가행진을 벌였고 일본 헌병대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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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석(徐載錫)[1909~1968]은 1909년 2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 학생들이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과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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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만(徐廷萬)[1889~1919]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서공유(徐公有)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현 익산시 오산면]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서정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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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석공들이 사용하는 도구나 기구. 석공예 도구(石工藝道具)는 석공들이 사용하는 도구나 기구이다. 전라북도 익산시는 예로부터 석자재 중 가장 강도가 높은 화강암의 품질이 뛰어났으며 화강암으로 석재 공예품을 만드는 솜씨 좋은 석공들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전국 석재 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황등 화강암은 조선 철종 때 청나라인들에 의해서 최초로 기업적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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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기법으로 석조각과 석조물을 제작하고 복원과 보수하는 장인. 석장이란 전통 기법으로 석조각과 석조물을 제작하고 복원, 보수하는 장인을 의미한다. 석장이 제작하거나 복원하고 보수하는 조형물은 대체로 성곽, 석교, 궁궐 건축 등의 구조물과 석탑, 부도, 석비, 석등, 불상, 능묘석인, 석수 등의 조각품이 있다. 석장이 사용하는 재료는 화강암이 가장 많이 사용되며, 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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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선백중(宣百仲)[1890~1931]은 1890년 7월 15일 익산군 황화면[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다. 1921년 5월경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였다. 조선독립단은 홍주의병(洪州義兵),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했던 이내수(李來修)가 대동단(大同團)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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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어양동에 전하여 오는 함열역에 얽힌 설화. 「세 부자 때문에 철길이 바뀐 호남선」은 기찻길이 놓이는 것을 반대한 세 부자가 부정 청탁을 하여 철길을 10리[약 4㎞] 밖으로 물러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세 부자 때문에 철길이 바뀐 호남선」은 2011년 1월 31일 전라북도 익산시 어양동의 김복현에게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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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내원(蘇來元)[1890~1967]은 1890년 7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1919년 9월에 가산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소내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리한 가산을 모두 군자금으로 내놓았고 정부 요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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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신목리에 속하는 마을. 옛날에는 ‘소농(巢農)’이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남병산에 쌓여 있는 마을이 겉보기에 용이 서리고 있는 형태라 하여 소룡(巢龍)이라 하였다고 한다. 덧붙여 ‘용이 살고 있는 집’ 혹은 ‘칠목제 산이 용을 닮았다’ 하여 ‘소룡(巢龍)’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룡마을이 있는 신목리는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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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정치가. 소선규(蘇宣奎)[1903~196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계산(桂山)이다. 소선규는 1903년 11월 30일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경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29년 후쿠시마[福島]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미군정하에서 서울시 부시장을 지냈으며, 1950년 5월에는 민국당(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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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불합리한 소작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소작인들이 익산 지역에서 벌인 운동. 익산의 자연환경은 농업에 적당하며 기후 또한 온난해서 농작물 발육에 좋았다. 특히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리조합이 설립되는 등 수리시설이 갖춰지면서 한해와 수해의 피해를 비교적 적게 받았던 쌀농사는 익산을 대표하였다. 1899년 군산 개항 이후 익산에는 농장을 개설하려는 많은 일본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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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석(蘇鎭碩)[1897~1928]은 1897년 9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창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김광덕(金光德)과 송종석(宋宗錫) 등이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자 3월 28일 오후 3시경에 또다시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시장]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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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형(蘇鎭亨)[1886~1936]은 1886년 6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으로 이주하여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안종운(安鍾雲)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하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일제에 노출되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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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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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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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일성(宋一成)[1893~1960]은 1893년 6월 3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등과 함께 익산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논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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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석(宋宗錫)[1883~?]은 1883년 9월 6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김광덕(金光德)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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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진행(宋鎭行)[1870~?]은 1870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이석용(李錫鏞)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동료 의병들과 함께 진안군 원일면 좌산리와 창북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2년 2월 1일에는 장수군 수서면 매암리와 진전면 호병리 등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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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숭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숭림사(崇林寺)는 익산시 함라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1345년(충목왕 원년) 선종 사찰로 창건되었다. 현재의 숭림사 영원전(崇林寺靈源殿)은 1926년 숭림사의 부속암자였던 성불암(惺佛庵)의 칠성각(七星閣)을 옮겨 온 것인데,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건물 내부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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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에 전하여 오는 성당리 지명에 얽힌 설화. 「승댕이 마을 유래」는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의 지명 유래 및 지역과 동학운동(東學運動)[1894]과의 관련성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승댕이 마을 유래」는 2011년 8월 16일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에서 안상일에게 채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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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신동 원광대학교 내에 있는 제1종 종합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 백제의 고도 익산에 있는 종합 박물관인 원광대학교 박물관은 2,000여 년의 익산과 호남 문화를 압축하고 있는 저장고이다. 그 저장고 속에는 유물을 만들어 사용하고 전승해 온 시대의 감성이 담겨 있다. 1968년 1월 도서관[지금의 원광보건대학교 별관] 한 층을 빌려 전시실로 ‘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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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은 상품이 거래되는 오일장, 상설 시장, 백화점 등을 지칭한다.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로 구분된다. 상설 시장이란 특정한 건물 안에서 항상 상품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정기 시장이란 특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다. 이처럼 상품교환의 발생 빈도에 따라 정기 시장과 상설 시장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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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新宗敎)는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서 창시된 신흥 종교를 가리킨다. 신종교의 선구는 1860년에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창시한 동학(東學)이다. 최제우가 1864년에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처형당하자, 그 뒤를 이어 해월 최시형(崔時亨)[1827~1898]이 동학을 전국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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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홍택(沈弘澤)[1909~1959]은 1909년 6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결심하였다. 심홍택은 1929년 12월 8일 강대성, 강상덕, 황한희 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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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양중석(楊重錫)[?~1907]은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출신으로,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중석이 속한 의병 부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익산, 강경, 여산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병들의 항일투쟁은 일본군와의 직접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집,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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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익산 제석교회 출신의 기독교인이며, 엄병옥(嚴秉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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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칠중(嚴七仲)[1898~1961]은 1898년 1월 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간 엄칠중은 강금옥을 통해 만난 엄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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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미륵산을 배경으로 하여 윤흥길이 쓴 장편소설. 소설가 윤흥길(尹興吉)[1942~ ] 은 1942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윤흥길은 1973년 원광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에미』는 1982년 윤흥길이 총 360쪽 분량으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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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섭정(攝政)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 흥선대원군은 강력한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펼쳤다. 서양과 일본 등의 지속적인 교섭 요구가 궁극적으로는 왕조(王朝)를 뒤흔들고 국가의 자주권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더구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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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는 연일정씨의 주요 세거지.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익산에 들어와 정착한 연일정씨 입향조는 정덕성(鄭德成)[?~?]이며, 후손들이 익산시 모현동2가 원모인마을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익산시 모현동은 고려 시대에 옥야현이 있던 곳이었으나,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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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오덕근(吳德根)[1861~1950]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오길영(吳吉泳)이다. 여동생은 오덕순(吳德順)이고, 아들은 오성환(吳成煥)이다. 오덕근은 186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길영이 고창군수로 부임하면서 전라도로 이주하였다. 오덕근이 아홉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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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 오지영(吳知泳)[1868~1950]은 1868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1891년 3월 12일 형인 오시영(吳時泳)과 오사영(吳泀泳)의 뒤를 이어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11월 14일 일어난 익산농민항쟁의 우두머리로 활약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대접주(大接主) 김방서(金邦瑞) 휘하의 중견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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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공립 박물관.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왕궁리 유적의 발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유적에서 출토된 9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해 백제 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되었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대의 왕궁터이자 후대의 사찰터였던 복합 유적지이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 있는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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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에 있는 저수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조직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928년 착공하여 1931년 완공하였다. 왕궁저수지는 익산시 왕궁면 일대 농민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건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왕궁저수지는 전라북도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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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저수지. 용화저수지는 1941년 2월에 착공하여 1942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일명 도순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용화저수지는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던 용화리 일대 농민이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성된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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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에 사는 멸치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웅어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대만, 중국의 광동 지방, 일본의 아리아케해 등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이다. 웅어는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연안에 주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북도 익산시와 군산시, 충청남도 서천시, 전라남도 목포시, 인천광역시 강화 등지에서 많이 잡힌다. 익산시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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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년 8월 전라북도 웅포에서 덕성창의 미곡을 탈취하려는 왜군과 고려군이 벌인 해상 전투.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고 금강과 만경강으로 둘러싸인 익산에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 시기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이 많고 곡식이 많으니 자연히 익산을 거쳐 가는 배와 말과 수레도 많았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이들도 찾았들었다. 바로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노리고 금강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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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감로도. 원광대 소장 건륭15년명 감로탱화(圓光大所藏乾隆十五年銘甘露幀畵)는 1750년(건륭 15) 수화승(首畵僧) 덕인(德仁)과 유봉(有捀)이 그린 감로도이다. 원광대 소장 건륭15년명 감로탱화 상단에는 6여래와 아미타삼존(阿彌陀佛)[관음보살(觀音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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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원불교 기도실. 익산성지 송대는 원불교 중앙총부 보존지구 소나무숲 사이에 3칸의 한옥으로 지은 기도실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원불교 교조 박중빈은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원불교 중앙총부, 즉 익산성지를 세웠다. 원불교 익산성지는 중앙총부로서 교단 행정의 중심지이며, 대중이 공동생활을 하는 신행도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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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우(劉奉祐)[1861~1947]는 1861년 7월 18일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튿날인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인 이중열(李仲悅)을 비롯한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후 최재붕(崔在鵬)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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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학교 설립에 기여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유허일(柳虛一)[1882~1958]의 본명은 유상은(柳相殷)이며, 법호는 유산(柳山)이다. 원불교에 귀의하여 중앙총부의 여러 직무를 수행했으며, 원광대학교 설립에 기여하였다. 유허일은 1882년 10월 19일 전남 영광군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익혀 한시와 사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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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의 남성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운제(芸齊)이다. 윤제술은 1904년 1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전주에 살고 있던 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으로부터 2년 동안 서예를 배웠다. 1919년부터는 계화도(繼華島)에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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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전통 의례를 거행할 때 특별히 갖추어 입었던 예복.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일생 동안 여러 가지 의례를 거치게 되는데, 의례를 치르는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 의례복이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의 귀천이 있었으므로 예복은 궁중과 양반층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개화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기독교 등 종교의 전파,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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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한일병합 전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익산 지역은 대체로 낮고 평탄한 구릉지와 넓은 평야가 많아서 의병 투쟁에는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의병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과 익산 출신 의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익산 지역의 의병 활동은 평야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주로 군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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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입었던 의복과 예복에 관련한 생활상. 과거에는 의생활이 문화적 환경만큼이나 지역의 자연적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로 지역에서 나는 천연재료로 옷이나 천을 만들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도 합성섬유가 대중화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삼베와 모시, 무명, 목화솜 등을 직접 만들어 옷을 해 입었다. 삼베는 고조선 시대에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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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만(李康晩)[1921~1956년]은 1921년 5월 21일 익산군 황화면[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남도 논산군에 편입]에서 태어났다. 1941년 공주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이강만은 7월 27일 오후 7시경 친구인 영촌량부(榮村亮夫), 송본길생(松本吉生)과 함께 당시 음식점을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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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겸중(李謙重)[1912~1948]은 1912년 10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김규선(金圭鮮), 최월상(崔月上), 정재향(鄭在鄕), 고창동(高唱東), 박재선(朴在善) 등과 함께 학교 내에 공산주의연구독서회(共産主義硏究讀書會)를 조직하였다. 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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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권재(李權載)[1922~?]는 1922년 2월 1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 경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권재는 같은 학교 동기생인 송택영(宋澤永) 등과 함께 민족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을 조직하고 기관지 발행과 선전물 작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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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홍(李圭弘)[1881~192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의관을 지낸 이기영(李棋榮)이고, 어머니는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이규홍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박이환(朴駬桓)·문형모(文亨謨)와 함께 태인에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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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하여 지방 개발이란 미명하에 시작된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근대화 과정. 개발과 척식이라는 미명하에 시작된 익산의 근대는 미곡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수탈과 착취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일제 강점기 익산은 이른바 근대의 창(窓)과 같은 도시이다. 일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경제 호황을 불러왔다. 유럽의 공장이 전쟁의 잿더미로 변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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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에 있었던 영화관. 이리극장은 현재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에 있던 종합 문화예술 시설이었다. 1920년대 이리좌극장으로 설립되어 강연이나 공연, 토론회 등이 다각적으로 개최되던 공간으로 운영되다가 이리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0~1980년대 이후에는 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이나 ‘극장’의 역할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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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시 지역에 있었던 농림 전문 교육기관. 농림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농업과 임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던 실업 학교였다.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농업 진흥과 농림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개교 당시 전국 유일의 갑종[5년제] 공립 농림학교였으며 조선의 근대 농업 지도자를 양성하는 최초의 농업 전문 교육기관이었다. 1922년 4월에 설립된 이리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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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한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역에 관한 이야기. 위도 북위 약 35도 56분, 경도 동경 약 126도 56분[약 35° 56‘N, 약 126° 56’E]. 현재 익산역이 위치하고 있는 좌표이다. 이 좌표에서 27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의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1950년 7월 11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 B-29기 여러 대가 이리역에 폭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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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에 미군의 오폭으로 양민 수백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인적·물적 피해를 막심하게 입혔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당시의 전라북도 이리시에서는 1950년 7월 11일 오후 2시부터 30분 동안 당시 이리역 부근 등에 미국 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두 기가 폭탄을 투하하여 철도 근무자와 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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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 이병기(李秉岐)[1891~1968]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호는 가람(嘉藍)이다. 아버지는 변호사 이채(李俫)이다.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으로 고전 연구와 시조의 혁신에 기여하였다. 이병기는 1891년 3월 5일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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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석(李秉釋)[1894~1930]은 1894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박사국(朴士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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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1927~1945]은 1927년 3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裸里農林學校) 2학년 재학 중에 동기생인 장지환·김구·김영준·호중기, 후배 서기용·김봉수·강동석·박기춘 등과 함께 비밀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선배 장이규·김직수·김환용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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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상(李有祥)[1876~1941] 1876년 6월 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상은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정대원(丁大元)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면과 용안면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이중열로부터 「독립선언서」 100매를 받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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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1889~1951]은 1889년 11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5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17년 국내에 들어왔다. 1919년 9월경 이재환은 우재룡·소진형·권영만 등과 함께 전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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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李侹)[1884~1925]은 1884년 10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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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열(李仲悅)[1869~1928]은 1869년 6월 18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좌암(佐庵)이다. 1919년 3월 1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봉우(劉奉祐)·이유상(李有祥) 등의 교인들과 함께 익산에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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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영화배우. 이집길(李集吉)[1923~1955]은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중반까지 활약한 익산 출신의 영화배우이다. 이집길은 1923년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유학하여 음악대학을 졸업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배우로 활약하면서 김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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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서예가이자 사업가. 이집천(李集阡)[1900~195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하당(荷堂)이다. 할아버지는 이석순이고, 아버지는 이배원(李培源)이다. 아들은 이화영이다. 이집천은 1900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19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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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7~?]는 1897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익산에서도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당시 이형우는 용안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함라와 웅포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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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평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와 창고. 수리조합은 근대기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하여 토지 개량과 수리 사업을 명분으로 창설된 기관이다. 익옥수리조합은 1920년 임익수리조합과 임익남부수리조합이 합병하면서 설립된 대규모 수리조합이다. 익옥수리조합의 초대 조합장은 일본의 수리왕으로 불리는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가 선출되었다. 익옥수리조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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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사찰 터. 미륵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백제 무왕[600~641] 대에 미륵 신앙을 구현하기 위하여 창건된 사찰이다. 규모가 가장 큰 중원(中院)을 중심으로 서원(西院)과 동원(東院)을 좌우로 배치한 3원 병렬식(三院竝列式) 가람이다. 각 원(院)마다 중문·탑·금당을 하나씩 일직선상에 배치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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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남북국 시대의 수각형 금동향로.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益山彌勒寺止金銅香爐)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남북국 시대의 수각형(獸脚形) 금동향로이다. 몸체의 다리가 짐승의 다리 형태이기 때문에 수각향로(獸脚香爐)라고 부른다. 반구형 뚜껑, 납작한 원통형 몸체, 4개의 다리로 구성되어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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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궁성 및 사찰 관련 유구. 익산 왕궁리 유적 유구(益山王宮里遺蹟遺構)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2019년까지 발굴 조사된 106개의 유구( 遺構)를 말한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궁장과 건물터에 대한 부분 조사를 실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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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 있는 백제 시대 무덤군. 익산 입점리 고분(益山笠店里古墳)은 삼국 시대의 굴식돌방무덤,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86년 봄 마을 주민이 우연히 무덤을 발견하였고, 1986년 문화재연구소, 1998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조사를 진행하였다.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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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사찰 터. 익산 제석사지(益山帝釋寺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백제 무왕 대의 왕실 사찰 터이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 대[600~641]에 창건되었고, 칠층 탑이 있었으며, 639년 뇌우로 모두 소실된 후 다시 재건하였다. 익산 제석사지는 1998년 5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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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농장 사무실. 익산 주현동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益山珠峴洞舊日本人農場事務室)은 1914년 일본인 오하시[大橋]농장의 사무실로 건립된 일식 2층 목조 건물이다. 오하시 요이치[大橋與市]는 일본 기후[岐阜]현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은행을 소유할 정도로 대부호였다. 오하시는 농장 개설 당시 주임이었던 에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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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식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益山春浦里舊日本人農場家屋)은 1940년대 지었다고 전하나 건축물 대장에는 1922년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이리농림학교 출신의 일본인이자 호소카와[細川]농장의 농업 기술자였던 에토[江藤]가 살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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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사곡마을에 있는 사당. 충렬사(忠烈詞)는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구한말 5열사인 이준·안중근·백정기·이봉창·윤봉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제사는 매년 2월 25일 지방 유림들이 모여 지내고 있다. 이순신 장군[1545~1598]은 본관은 덕수, 시호는 충무공이다.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1592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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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기 도요지. 익산 백제토기 도요지(益山百濟土器陶窯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기 도요지이다. 미륵산 동쪽 해발 150m 지점의 사면에 2기가 나란히 있다. 제1호 가마는 길이 8.5m의 반지하식으로 아치식 천장은 일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독사머리형이다. 제2호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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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시립 풍물단. 익산시립풍물단은 익산시립합창단, 익산시립무용단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창단한 시립 예술단이다. 익산시립풍물단은 창단 공연 「비상」을 시작으로 2012년 여수 엑스포 기획 공연에서 넌버벌 타악 퍼포먼스 「더 굿(THE GOOD)」을 공연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콘텐츠의 세계화를 공연을 하고 있는 익산시를 대표하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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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조성된 국가식품클러스터.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 있는 푸드폴리스(Foodpolis)는 우리나라 유일의 식품클러스터이다. 2009년에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2012년 공사가 시작되어 2017년 12월 산업단지가 완공되었다. 산업단지의 전체 규모는 232만㎡이며 총 사업비로 5535억 원이 투입되었다. 푸드폴리스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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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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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의 지형, 지질, 기후, 자연재해 등의 자연 환경. 전라북도 익산시는 한반도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줄기가 흐르고 북서쪽으로 금강이 흐른다. 익산시의 지리적 형태는 평탄한 평야지대를 산이 감싼 모양을 띠며, 비옥하고 평탄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익산시는 오랜 침식을 통해 형성된 구릉지와 만경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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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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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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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장준석(張準錫)[1903~1962]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천운(天圓)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장치명(張致明)이다. 장준석은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한 후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평민대학(平民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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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해방 이후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남겨진 일본인 소유의 주택.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비롯한 기업, 토지 등 각종 부동산과 동산류가 이에 포함되는데, 그중 주택은 ‘적산가옥’이라 칭한다.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어도 현재까지 익산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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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활동한 종교인. 전음광(全飮光)[1909~1960]의 본명은 전세권(全世權)이며, 법호는 혜산(惠山)이다. 아버지는 전영규(全永奎)이고, 어머니는 전삼삼(田參參)이다. 원불교 최초의 잡지 『월말통신』 등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원불교 교리 전파와 교세 확장에 기여하였다. 전음광은 1909년 6월 17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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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한 1940년대 이리읍 중심부 지도. 전촌민자(田村敏子)[다무라 도시코]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속한 이리읍에서 태어난 일본인 여성으로, 일제 강점기에 20대 초반까지 이리에서 살았다. 23세이던 1945년에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전촌민자의 이리지도는 2003년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리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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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시인. 정사섭(鄭四燮)[1910~1944]은 익산 출신으로 에스페란토(Esperanto)로 쓴 시집을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한 한국인 최초의 에스페란토 시인이다. 정사섭은 1910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서 태어났다. 1922년 공립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4년 학교 교무 개정을 요구하는 동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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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정제호(鄭濟鎬)[1821~1897]의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시순(時舜), 호는 만포(滿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유증(鄭有曾)이고, 할아버지는 정택응(鄭宅膺)이다. 아버지는 북촌(北村) 정석행(鄭碩行)이며, 어머니는 교관 이의술(李宜述)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훈련원첨정을 지내고 경술국치 때 자결한 애국지사 정동식(鄭東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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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진용(鄭晉容)[1893~1965]은 1893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의 계명학원(啓明學院) 교사로 일하고 있던 1932년 7월에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교육자동지회(敎育者同志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8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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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고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활동.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의견과 이익이 존재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는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야기한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다. 현대의 정치는 주로 선거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정치는 국가 권력이 수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일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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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정판성(鄭判成)[1883~?]은 1883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김흥여(金興汝)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정판성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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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익산 지역의 열녀.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스물한 살 때 생원 정희중(鄭希重)과 결혼하였다. 정희중이 병들어 죽자 딸을 가엾게 여긴 친정 부모가 송씨를 재가시키기 위해 다른 집안에 납채(納采)까지 보냈지만 사양하였다. 『익산시사』에는 정희중이 고려 말 일본 정벌에 참가해 전사했다고 전하나, 『세종실록』에는 병들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송씨는 홀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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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 제석교회는 1906년 익산시 웅포면에 설립되었다. 익산 지역의 초기 교회 중 하나로 일찍부터 부용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썼다. 부용학교 졸업생과 군산 영명학교로 진학한 교인들이 익산·군산·강경 지역의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2014년 한국기독교사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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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남헌(趙南憲)[1923~1996]은 1923년 1월 10일 지금의 익산시 남중동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한 뒤 송정섭(宋正燮) 등과 교류하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1월 말경에는 전주(全州)에서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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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관(趙容寬)[1885~1950]은 1885년 6월 29일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익산 지역의 3.1운동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1920년 8월 군산노동공제회(群山勞動共濟會)를 창립하였고, 1924년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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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지역민들이 살았던 전통 가옥의 형태 및 구조. 익산 지역의 주생활은 전형적인 민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익산 지역의 평야지대라는 자연환경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었고, 주거 형태는 농촌 민가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일식 가옥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리역폭발사고’를 겪으며 판자집 촌이 아파트로 변모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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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 속하는 마을. 중촌마을은 일제강점기 춘포리의 중심부에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춘포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화리, 간리, 김제군 회포면, 유강리의 각 일부와 신평리, 신룡리, 고잔리, 신월리의 전 지역을 병합하여 전라북도 익산군 익산면 대장촌리로 개설되었고, 1917년에 익산군 춘포면으로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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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기독교 정신을 건학 이념으로 삼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다운 인간을 기르는 인성교육과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박애[모든 사람을 널리 사랑하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기독교 정신], 숭실[허례와 허식을 버리고 실질을 숭상하는 생활 태도]’이다. 진경여자고등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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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역과 다른 지역의 역 사이를 기차가 다닐 수 있게 연결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교통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철도가 완공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경부선 철도가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고, 1905년 1월 1일 개통되면서 종단 철로의 기본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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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친일 법조인. 최대교(崔大敎)[1901~1992]의 본관은 강화(江華)이며, 호는 화강(華岡)이다.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최현중(崔顯中)이다.. 최대교는 1901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1926년 2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法政]대학 예과(豫科)에 입학하였다. 1929년 호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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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최윤보(崔允甫)[?~1909]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자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에 나섰다. 최윤보는 19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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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장윤(崔長潤)[1916~1984]은 1916년 12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경에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주둔한 일본 헌병대에서 통역으로 재직 중이던 최장윤은 임시정부 화북지구 특파원인 이규학(李圭鶴)을 사형 직전에 구출하여 함께 탈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장윤은 광복군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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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에 있는 철도역.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역은 과거 전라선이 지나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폐역하고 역사(驛舍)만 남아 있다. 춘포역은 전라선의 역사(驛舍)로 1914년 건립되었고 본래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당시 역 근처에 일본인 농장이 설립되어 만들어진 대장촌이라는 일본인 이민촌이 있어서 일본인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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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종이나 천에 불화를 그리는 장인. 탱화장(幀畵匠)은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불교 경전과 의궤에 따라 종이나 천에 불화(佛畵)를 그리는 장인을 말한다. 불화 제작을 담당하는 장인은 화원(畵員), 화공(畵工), 화사(畵師), 화수(畵手), 용안(龍眼), 존숙(尊宿), 편수(片手), 금어(金魚)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탱화장을 지칭하는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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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학교교육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활동. 2005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익산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학습을 즐길 수 있는 학습 공동체 건설을 통한 개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도시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힘을 기울이고 있다. 평생학습도시는 학습을 통하여 도시의 번영과 사회적 통합, 지속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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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지형의 높낮이에 기복이 없고 지표면이 평평한 땅. 익산 지역 만경강 유역의 평야를 만경평야 혹은 호남평야로 부르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만경평야’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남평야[전북평야]는 만경평야의 상위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 최대 면적을 가진 평야인데, 바로 전라북도 익산시, 전주시, 정읍시,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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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문인 송영구의 문집. 『표옹유고(瓢翁遺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인 송영구(宋英耉)[1556~1620]의 문집이다. 송영구는 성혼(成渾)의 제자이고 이항복(李恒福), 황신(黃愼), 이정귀(李廷龜) 등과 교유하였다. 『표옹유고』는 송영구의 7대손인 송문술(宋文述)이 편찬하였으며, 간행 연도는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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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에 있는 한국SGI의 문화회관. SGI(Soka Gakkai International)[국제창가학회]는 니치렌[日蓮][1222~1282] 대성인의 불법을 신봉하는 일본계 종교 단체로 원류는 1930년에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와 도다 조세이[戶口城聖] 등이 창시한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이다. 일본 패전 후인 1946년 창가교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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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는 함열남궁씨의 주요 세거지.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남궁원청(南宮元淸)[961~?]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함열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조선 시대 함열현은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지역이다. 함열남궁씨는 현재 성당면을 중심으로 익산시 여러 지역에 세거하고 있다. 익산시 성당면은 장선리(長善里), 와초리(瓦草里),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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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익산 지역의 역사. 익산시는 전라북도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령산맥의 지맥인 천호산과 미륵산이 동부에 있다. 서북부에 함라산 줄기가 이어져 남서로 향하는 구릉과 대소 하천이 비옥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충청남도 논산시와 부여군이 맞닿아 있으며, 서로는 옥구평야와 남으로는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평야에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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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전조차장역부터 전라북도 익산시의 익산역을 거쳐 전라남도 목포시 목포역까지 연결하는 철도. 경부선이 갈라지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전조차장역에서부터 전라북도 익산시와 논산·호남·나주평야를 거쳐 전라남도 목포시의 목포역까지 이르는 철도이다. 길이는 252.5㎞이다. 호남선은 익산 지역에 익산역과 황등역, 함열역, 용동역이 있다. 황등역은 무배차 간이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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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전조차장역부터 전라북도 익산시의 익산역을 거쳐 전라남도 목포시 목포역까지 연결하는 철도. 경부선이 갈라지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전조차장역에서부터 전라북도 익산시와 논산·호남·나주평야를 거쳐 전라남도 목포시의 목포역까지 이르는 철도이다. 길이는 252.5㎞이다. 호남선은 익산 지역에 익산역과 황등역, 함열역, 용동역이 있다. 황등역은 무배차 간이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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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건표(洪建杓)[1923~197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경중(敬中), 호는 호산(壺山)이다. 홍건표는 1923년 9월 17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복중학교 재학 중이던 홍건표는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현상(李賢相)·장의찬(張宜燦)·주낙원(朱樂元)·성익환(成益煥)·명의택(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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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갑(洪淳甲)[1896~1929]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홍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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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영섭(洪永燮)[1855~1922]은 1855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3월 2일에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 박영진(朴永鎭)은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 면의 연락 및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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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에 전하여 오는 유희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 방축마을에서 불리는 「화투노래」는 화투의 열두 패를 1년 열두 달에 비유하여 노래한 도구유희요이다. 화투에는 정월부터 섣달까지 각 달을 상징하는 열두 종류의 그림이 있다. 「화투노래」는 1년 열두 달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열두 종의 화투 그림에 투영하여 각 달의 특색과 부르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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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황등교회에 있는 종. 황등교회 사랑의 종은 1884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한국의 교회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추정된다. 미국 플로리다 리스버그 제일장로교회에서 사용하던 종을 1950년에 계일승 목사가 기증받아 황등교회의 교회 종으로 사용하였다. 황등교회 사랑의 종은 종의 표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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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생산되는 화강암. 황등석은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서 채굴되며 건축 자재와 조각, 석재 조형물에 쓰인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사, 청와대 영빈관 등에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황등석으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 화강석 판석은 생산 지역에 따라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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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염규(黃濂奎)[1922~2003]는 1922년 1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서 태어났다. 치문학교(致文學校)[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의 치문초등학교] 교원으로 일하던 중 1943년 10월부터 1944년 2월까지 5학년 수업시간에 일제를 비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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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정환(黃廷煥)[1905~1948]은 1905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5월 16일 순종황제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중동중학(中東中學)의 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裁文)·황정환(黃廷煥) 등...